"어이~ 한 대 푸고 하시더"
"담배 안피웁니다 피고 하이소"
"아이고 아고 아고"
단숨에 앉지 못하고 주춤주춤 거리며 겨우, 정리해 둔 자재위에 걸터 앉아서 담배를 피운다.
'좀 쉬었다 합시다' 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난 멀찍이 떨어진 곳에 걸터 앉는다.
힘들지는 않다. 지루해도 좋다. 뭐라도 하자. 망할 징병제.
스스로에게 하루에 수천번씩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땀을 비오듯이 흘리며 온몸으로 삽질을 하면서도 머릿 속으로는 계속해서 정리를 한다. 생각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아직 그럴듯한 결론이 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아직은 괜찮은 것 같다.
'곧 군대가는데 어느 회사에서 써주겠어요?'
망할 군대에 끌려갔다가 나오면 이제 저 핑계도 쓸 수 없게 되어 버리겠지.
내가 망할곳에 다녀온 후에도 지금과 같은 정도의 뭔가를 해낼 수 있다면 어떻게든 취직은 될 것이다. 하지만 2년동안 그곳은 또 얼마나 변할까. 지속적인 관심을 쏟고 있는 지금도 이런 식이라면.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다. '난 쉽게 변하지는 않을거야' 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침체]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이미 돈을 모을 힘도 잃어버린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이 따위 용역'이라며 탄식하면서도 꼬박꼬박 일하러 나오는 사람들 틈에서 일하는 바람에.
이 양반들은 그 푼돈을 받고서도 꼬박꼬박 담배를 사피우고, 어쩌다 일당이 다음날로 밀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목돈이 생겼다며 그 돈을 홀라당 국밥집 주인 할망구에게 가져다 주고는 한다.
용역 이따위 잡일 대충 해버리면 그만 아닌가. 어차피 열심히 하건 요령껏 하건 일당은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대충 하는 것 같으면서도 '지나가다 다쳐'라며 누군가를 위해 튀어나온 못을 구부려 두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설렁설렁 일한다.
어떤이는 내가 매일 나오는 현장에 처음 왔으면서, 어리게 보이는 내게 인생살이의 충고 따위를 해주기도 한다. 정작 자신은 '참집'이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또 어떤이는 스스로를 개잡부라 하며 일하는 내내 탄식하지만, 나만한 자식이 조만간 제대한다며 잔뜩 들떠 있기도 한다.
안전모를 쓰고 '현장'에 있는 동안은, 아무일도 없다는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점심을 먹고 남은 시간을 쉬기 위해 안전모를 벗고 낮잠을 자는 곳 또한 '현장'이다.
오늘도 다 새거다 호미 메고 가자스라
내 논 다 매거든 네 논 졈 매어 주마
올길에 뽕 따다가 누에 먹여 보자스라
별의별 생각을 다 하다보면, 더 이상 생각할 거리가 없어져 버린다. 그럴 때 마다 생각나는 것은 수도 없이 읽었던 교과서와 문제집의 지문이나 고전시다.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
'여기서의 님하는 님이시여 라는 말이야으' 라는 2년간 담임이셨던 국어 선생님의 음성도 기억난다.
내 논을 다 매면 네 논도 매어주겠단다.
5시 50분이 되면, '오늘도 무사히 넘겼구나' 라며 안도한다.
6시 40분에야 겨우 도착하는 인력 사무실까지, 낡은 봉고차에 운전기사 최씨 아저씨가 즐겨듣는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들으며 오는 길은 즐겁기만 하다. 비록 한 쪽 좌석에 4명이 끼어 앉아 다리가 저려 죽겠더라도 말이다.
"오늘도 무사히 일당을 받는구나."
일당이라.
인력 사무실로 들어오는 일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일당잡부가 꼬박꼬박 나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그럴듯한 이유는 '주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저승길은 빈손으로.
마음은 편하다.
어쩌다 쉬는 날이면, 오랜만에 기타를 잡아 보고는 퉁퉁 부어버린 손마디를 저주하며 기타를 내팽겨치고는 한다. 앞꿈치가 움직이지도 않는 불편한 안전화 덕분에 온통 물집이 생겨버린 발로 조심조심 걸어다니기도 하고, 계단에서 방심하다 못에 긁힌 상처를 살펴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차라리 멍이 낫지 타박상이나 찰과상은 씻기가 힘들어' 라는 생각을 하기도.
일하는 만큼 번다라.
어찌되었거나 가장 좋은 방법은 거저먹는게 아닐까. 일하는 만큼 버는것은 너무 불공평해.
다들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돈이 안된다고 불평한다. '난 가순데, 판이 안팔려', '난 코던데, 요즘은 개나소나 코더라 프리랜서가 되어 버렸어', '난...'
늬들은 좋겠다. 좋아하는 걸 하면서 돈도 벌 수 있어서. 난 무려 2년을 나를 위해 쓰지 못했고, 앞으로 또 2년을 그렇게 보내야 한단다. 게다가 일당잡부라 하루를 온전히 '잡부일'을 위해 써야된단다. 잠이 모자라서 비실비실 하다가는 '일당이 안나오는게' 아니라 '일당을 영영 못 받게 될 수도' 있거든. 프랭키는 메기에게 항상 '자신을 보호하라'고 말했지만 사고는 순간이었지. 메기는 자신이 그렇게나 하고 싶었던 권투라도 원 없이 할 수 있었지만 난 아직 시작도 못했거든.
문득 생각난다.
"노가다 처음이야?"
"예"
"젊은 친구가 알바하는 거야? 노가다가 꿈은 아닐거 아냐?"
"그렇군요."
아버지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아버지, 전 돈을 벌고 싶어요. 그래서 30대에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어요."
"그래 니가 하고싶은데 뭔데?"
하고 싶은게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뭔가 하기에는 너무 지쳤어요. 차라리 노가다를 하더라도 돈을 벌고 싶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삼켜버렸다. 그냥 얼버무렸다.
그렇게 얼버무렸다.
언젠가는 이 순간을 기억해 내려 애쓸 때도 올지 모른다. 어쩌면 지금 BGM 으로 흐르는 이 곡을 들으면 이 순간이 문득 생각날지도.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 넘긴다고 해도 찌꺼기는 남지 않을까.
아마도 이 글은 그 찌꺼기의 일부겠지만, 그 찌꺼기도 시간이 엄청 흐르고 나니 금값이 되어 되려 파내더라.
지금이 좋구나. 그냥 바로 전 보다는 지금이 더 좋은 것 같다. 어찌 되었건 난 이렇게 되어 버렸고, 이렇게 된 덕분에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있으니까. '그 때 이렇게 했으면 지금보다 더 훌륭했을 거야' 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 때 이렇게 했으면 지금 여기에서 이 글을 쓸 수 없을거야' 라고는 즐겨 생각한다.
새삼 오늘이 아쉬워라.
"담배 안피웁니다 피고 하이소"
"아이고 아고 아고"
단숨에 앉지 못하고 주춤주춤 거리며 겨우, 정리해 둔 자재위에 걸터 앉아서 담배를 피운다.
'좀 쉬었다 합시다' 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난 멀찍이 떨어진 곳에 걸터 앉는다.
힘들지는 않다. 지루해도 좋다. 뭐라도 하자. 망할 징병제.
스스로에게 하루에 수천번씩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땀을 비오듯이 흘리며 온몸으로 삽질을 하면서도 머릿 속으로는 계속해서 정리를 한다. 생각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아직 그럴듯한 결론이 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아직은 괜찮은 것 같다.
'곧 군대가는데 어느 회사에서 써주겠어요?'
망할 군대에 끌려갔다가 나오면 이제 저 핑계도 쓸 수 없게 되어 버리겠지.
내가 망할곳에 다녀온 후에도 지금과 같은 정도의 뭔가를 해낼 수 있다면 어떻게든 취직은 될 것이다. 하지만 2년동안 그곳은 또 얼마나 변할까. 지속적인 관심을 쏟고 있는 지금도 이런 식이라면.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다. '난 쉽게 변하지는 않을거야' 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침체]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이미 돈을 모을 힘도 잃어버린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이 따위 용역'이라며 탄식하면서도 꼬박꼬박 일하러 나오는 사람들 틈에서 일하는 바람에.
이 양반들은 그 푼돈을 받고서도 꼬박꼬박 담배를 사피우고, 어쩌다 일당이 다음날로 밀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목돈이 생겼다며 그 돈을 홀라당 국밥집 주인 할망구에게 가져다 주고는 한다.
용역 이따위 잡일 대충 해버리면 그만 아닌가. 어차피 열심히 하건 요령껏 하건 일당은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대충 하는 것 같으면서도 '지나가다 다쳐'라며 누군가를 위해 튀어나온 못을 구부려 두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설렁설렁 일한다.
어떤이는 내가 매일 나오는 현장에 처음 왔으면서, 어리게 보이는 내게 인생살이의 충고 따위를 해주기도 한다. 정작 자신은 '참집'이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또 어떤이는 스스로를 개잡부라 하며 일하는 내내 탄식하지만, 나만한 자식이 조만간 제대한다며 잔뜩 들떠 있기도 한다.
안전모를 쓰고 '현장'에 있는 동안은, 아무일도 없다는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점심을 먹고 남은 시간을 쉬기 위해 안전모를 벗고 낮잠을 자는 곳 또한 '현장'이다.
오늘도 다 새거다 호미 메고 가자스라
내 논 다 매거든 네 논 졈 매어 주마
올길에 뽕 따다가 누에 먹여 보자스라
별의별 생각을 다 하다보면, 더 이상 생각할 거리가 없어져 버린다. 그럴 때 마다 생각나는 것은 수도 없이 읽었던 교과서와 문제집의 지문이나 고전시다.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
'여기서의 님하는 님이시여 라는 말이야으' 라는 2년간 담임이셨던 국어 선생님의 음성도 기억난다.
내 논을 다 매면 네 논도 매어주겠단다.
5시 50분이 되면, '오늘도 무사히 넘겼구나' 라며 안도한다.
6시 40분에야 겨우 도착하는 인력 사무실까지, 낡은 봉고차에 운전기사 최씨 아저씨가 즐겨듣는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들으며 오는 길은 즐겁기만 하다. 비록 한 쪽 좌석에 4명이 끼어 앉아 다리가 저려 죽겠더라도 말이다.
"오늘도 무사히 일당을 받는구나."
일당이라.
인력 사무실로 들어오는 일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일당잡부가 꼬박꼬박 나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그럴듯한 이유는 '주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저승길은 빈손으로.
마음은 편하다.
어쩌다 쉬는 날이면, 오랜만에 기타를 잡아 보고는 퉁퉁 부어버린 손마디를 저주하며 기타를 내팽겨치고는 한다. 앞꿈치가 움직이지도 않는 불편한 안전화 덕분에 온통 물집이 생겨버린 발로 조심조심 걸어다니기도 하고, 계단에서 방심하다 못에 긁힌 상처를 살펴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차라리 멍이 낫지 타박상이나 찰과상은 씻기가 힘들어' 라는 생각을 하기도.
일하는 만큼 번다라.
어찌되었거나 가장 좋은 방법은 거저먹는게 아닐까. 일하는 만큼 버는것은 너무 불공평해.
다들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돈이 안된다고 불평한다. '난 가순데, 판이 안팔려', '난 코던데, 요즘은 개나소나 코더라 프리랜서가 되어 버렸어', '난...'
늬들은 좋겠다. 좋아하는 걸 하면서 돈도 벌 수 있어서. 난 무려 2년을 나를 위해 쓰지 못했고, 앞으로 또 2년을 그렇게 보내야 한단다. 게다가 일당잡부라 하루를 온전히 '잡부일'을 위해 써야된단다. 잠이 모자라서 비실비실 하다가는 '일당이 안나오는게' 아니라 '일당을 영영 못 받게 될 수도' 있거든. 프랭키는 메기에게 항상 '자신을 보호하라'고 말했지만 사고는 순간이었지. 메기는 자신이 그렇게나 하고 싶었던 권투라도 원 없이 할 수 있었지만 난 아직 시작도 못했거든.
문득 생각난다.
"노가다 처음이야?"
"예"
"젊은 친구가 알바하는 거야? 노가다가 꿈은 아닐거 아냐?"
"그렇군요."
아버지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아버지, 전 돈을 벌고 싶어요. 그래서 30대에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어요."
"그래 니가 하고싶은데 뭔데?"
하고 싶은게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뭔가 하기에는 너무 지쳤어요. 차라리 노가다를 하더라도 돈을 벌고 싶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삼켜버렸다. 그냥 얼버무렸다.
그렇게 얼버무렸다.
언젠가는 이 순간을 기억해 내려 애쓸 때도 올지 모른다. 어쩌면 지금 BGM 으로 흐르는 이 곡을 들으면 이 순간이 문득 생각날지도.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 넘긴다고 해도 찌꺼기는 남지 않을까.
아마도 이 글은 그 찌꺼기의 일부겠지만, 그 찌꺼기도 시간이 엄청 흐르고 나니 금값이 되어 되려 파내더라.
지금이 좋구나. 그냥 바로 전 보다는 지금이 더 좋은 것 같다. 어찌 되었건 난 이렇게 되어 버렸고, 이렇게 된 덕분에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있으니까. '그 때 이렇게 했으면 지금보다 더 훌륭했을 거야' 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 때 이렇게 했으면 지금 여기에서 이 글을 쓸 수 없을거야' 라고는 즐겨 생각한다.
새삼 오늘이 아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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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쓴 글이, 내가 모르는 곳에,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인용되고 싸질러지는 것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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