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살아가요. 난 별의 별 것들에, 별 희한한 것들에, 정말 사소한 것들에 대해 의문을 품었고, 또 답을 찾아보곤 했었지만, 이것에 대한 이유는 아무리 궁리해 봐도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살아가는 것 같긴 해요. 하지만 나조차도, 내가 왜 살아가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난, 무엇을 위해 살고있고, 무엇 때문에 살고있고, 왜 계속 살아가려고 하는지를.
언젠가 '슐츠' 씨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어요.
"넌 왜 사냐?"
난 장난스럽게 '죽지 못해 살지요' 라는 어느 발췌구절로 얼버무렸어요. 하지만 한편으론, 내가 품은 의문이 나만의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대체 왜?
하필 지금인가요?
언젠가 '홀릭' 씨와 했던 대화가 문득 기억나요.
"우리가 지금 이카고 있는것도 안있나, 나중에는 추억으로 남겠제?"
그 말 한 마디가, 아니 그마저도 이제는 정말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어요. 언젠가는 추억이 될거라고 했던 말 조차도.
우연이 겹쳐서 지금이 있는 거겠죠. 그 수많았던 순간들은 아마도 결코 돌이킬 수 없을 거예요.
난 변했어요. 아니, 그렇게 느꼈어요. 그래서 홀릭씨에게 물었어요.
'내가 변한 것 같냐?'
홀릭씨는 그렇지 않다고 했어요. 그래서 확실해 졌어요. 난, 홀릭씨에게는 변함없는 나로 있었다라고.
하지만 변한 것 같은 느낌은 존재했고, 난 어디에서 그것을 느꼈는지를 찾아냈어요. 그리고 우연히도 지금, 내가 이렇게 되었던 때 처럼, 바로 그 때 처럼 몇몇 우연들이 겹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우연들에서 난, 다시금 변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어요. 아니, 변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어요. 그래서 난, 그 때는 못했던 일을 하고 싶은 거예요. 왜냐하면 변하기 전의 심정으로 남긴 글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왜 그랬는지 언제라도 알 수 있도록.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어떤 관계인가요?
1979 는, 어느틈엔가 이런 생각들을 할 때면 언제나 등장한 녀석이에요. 어렴풋이는... 아니 언젠가는 이것에 대해서도 글을 쓸 것 같았지만, 그것이 지금이 될 줄은 몰랐어요. 왜냐하면 이건 너무 복잡한 문제였거든요. 시간이 나면 이것에 대해 생각하곤 했었는데, 언제나 답을 찾지 못했어요. 어쩌면 난 답을 찾으려 이 글을 쓰고있는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난 아직 답을 찾지 못한 거예요.
사람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대요. 전 처음에는 이것에 대해 회의적이었어요. 왜냐하면 '살아가는 이유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살려고 발버둥치는데, 고작 혼자라는 이유로 살 수 없다니!' 정도로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어요. 지금은 아마 다르게 생각 할 거예요.
아마도 처음부터 내가 혼자였다면, 혼자 살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처음부터 그랬다면.
갑자기 무슨?
진리는 없어요. 답이란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녀석이라 도무지 확신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인지 내게는, 대부분의 것들이 미결로 남아요.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이것들에 대해 집착하느냐면, 그건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지금 중요한 건 답을 찾는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이런 느낌의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이 글을, 난 아마 '가장 마음에 드는 글' 이 되게 하고 싶은 거예요. 이젠 더 이상 '모르겠다' 따위로 남지 않게끔. 정말 나같은 글로, 나와 같은 느낌으로, 내가 느껴지게, 그렇게 조금씩.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가요?
그러니까 난, 역시나 나에 대해서 쓰기는 어색해요. 하지만 1979 라는 것에 대해서는, 지금 같아서는 키보드가 부숴질 때까지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것에 대해 말하려 해요. 내게는 96 만큼이나 특별한 숫자.
알고 있나요?
1979 는 Smashing Pumpkins 라는 밴드의 그저그런 노래입니다. 나름대로 인기는 있지만 폭발적인 인기는 아니었어요. 아니, 설령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더라도 흥에 겨워 절로 머리를 흔들만한 곡도, 연주와 가창력에 감탄하며 들을 수 있는 곡도 아니거든요. 그래서인지 이 곡을 좋아하거나, 이 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 역시 그저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는, 나 역시 그저 흥얼거리는... 그런 곡이랍니다.
하지만 말이에요, 이 분위기에 압도당할 정도의 힘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기술도 없는 이 노래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어요. 그 누군가는 아마도 내가 정말 잘 아는 녀석일 텐데, 지금부터는 이 녀석의 이야기를 할까 해요.
처음?
처음에는 말보다는 침묵에서 발견한 진솔한 느낌 때문이었어요. 뭔가를 말하려다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있구나 라는 걸 느낄 때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이런 말도 안되는 이유였어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편해져 버렸어요. 어쩌면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였다고도 할 수 있어요. 원래가 조용한 녀석이었다면, 아무런 말이 없어도 '녀석은 별 일 없이 잘 살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솔직하게는, 편해서였어요. 난 두 가지 모두를 해봤으니까, 침묵이 편하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남을 배려한 행동' 따위의 예쁘장한 이유가 아니었던 거예요.
지금?
숨길 수 없어요.
무슨 생각에서 나온 것인지... 라는 것은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답이 없는 문제예요. 난 단지 나일 뿐이고, 네가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느낌은 달라요. 이 느낌이란 것은... 숨길수가 없어요. 그것이 경험이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건 간에, 분명히 지금 이 순간에도 느낌이라거나 분위기는 '머리를 굴려서 나온 답' 보다는 조금 더 솔직해요. 그리고 난 그 느낌을 좋아해요.
숨길 수 없어요.
난 내가 아닌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나일 지언정, 내 마음에 드는 나는 아니었기에, 그렇게 난 내가 싫었어요. 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내 느낌이 아니었기에. 그리고 나에게만큼은 숨길 수 없었어요.
아이러니
내가 말하는 진실이라면, 전해졌을지도 몰라요. 순전히 제멋대로인 내 생각에 따르면, 저건 무슨 짓을 해도 느껴진다고 하니까.
하지만 언제나 답이 없었던 나라면, 이번에도 역시 답이 없을 거예요. 난 내가 말하는 것을 확신 할 수 없어요. 그래서 기껏 찾아낸 답 역시, 답이 아니기에 난 느낌을 믿을 수 밖에 없었어요. 요컨데 사실대로 얘기하자면, 복잡한 과정은 모두 버려버리고 그냥 본능에 충실한 거예요.
이 말도 안되는 아이러니 속에서, 난 1979 라는 노래를 만났어요.
기억
이 신비한 것. 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리 궁리해 봐도 모르겠어요. 난 왜 기억하고 있을까?
하지만 이 기억 한구석엔, 이게 있어요. 내가 그리도 찾으려고 발버둥 쳤던 것.
어디에 있나요?
단 하나의 문제점은 바로 이게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다는 점이에요. 물론 그것이 기억나긴 해요. 분명 기억속에 있긴 해요. 하지만 찾을수가 없어요. 아니, 찾았다고 해도, 완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찾았다고 할 수 없었어요. 어쩌면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인지,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도무지 난 만족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찾은 그것에.
나, 그리고 모두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셔요. 하지만 나에게 술은, 그저 맛 없는 물일 뿐이에요. 괜시리 화장실만 들락날락하게 만드는, 그런 녀석일 뿐이에요. 어쩌다 보니 난, 또 다시 문제를 만난 거예요.
'사람들은 왜 이 맛없는 걸 먹는거지?'
수 없이 찾아낸 작은 이유들을 팽겨쳐버리고, 내가 생각한 가장 그럴듯한 이유는 이거였어요.
'그들은 술을 통해서 내가 찾으려 했던 것을 찾았구나'
왜냐하면 나 역시, 술을 먹어서 그것을 찾을 수 있다면, 죽을 때 까지도 마실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사실 내가 찾으려는 것과 같은게 아니라도 상관 없었어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술을 통해 찾은 것이, 내가 찾으려던 것 만큼이나 그들 자신에게는 전부일테니까.
무엇인가요?
내게 이것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요. 다른 사람의 그것은, 가끔씩은 제 욕심에 미화되어 버리기도 하고,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보는 것 처럼 선명하기도 해요. 어쩌면 이것이 내것이 아니라서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분명 내가 생각하는 느낌과는 달라요.
하지만 나에게 이건... 그 자체에요. 내겐 이것들이 도무지 선명하지가 않아요. 완전히 실패해버린 추상화 처럼, 그렇게 말도 안되는 모습이에요. 그래서 난 이것을 '기억해내는 것' 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난 이것을 그리도 좋아하지만, 내게 이것은 이름난 화가의, 도무지 그림이 맞는지 아닌지 조차 분간할 수 없는 그림처럼 느껴질 뿐이에요.
하지만 이 엉망인 그림이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것이 '내가 찾던 것'이라는 걸 알았을 때.
어땠나요?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정말 미친듯이 기뻤어요. 난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돌아간다는 것. 같은 것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다는 것. 아니 불확실했지만, 그것을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 그것에 전율했어요. 막시무스가 마지막 순간에, 그토록 그리던 가족에게 가던 순간처럼. 가족으로 향하는 길에서 그의 손끝에 스친 풀처럼, 그렇게...
내가 매 순간 받았던 느낌들은, 너무 많아서인지는 몰라도 금방 잊혀져버려요. 하긴, 그 작은 것들에서 받은 느낌이 그다지 중요할 거라는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그런 것들을 쉽게 잊었어요.
하지만, 내가 돌아간 그 순간에서의 느낌은...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 작은 것들에서 난 '예전과 다를바 없구나!' 라는 감탄을 하는 거예요. 비록 기억속, 아니 상상속일 지언정.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겨우 찾은 이것을 '추억' 이라고 말해요.
추억
다른 사람의 추억은 어찌 되어도 좋아요. 나에게 추억은, 추억 그 자체예요. 그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추억이란 단순히 지나간 일에 불과해요. 하지만 난 나도 모르게 이 '추억' 이란 것에 엄청나게 좋은 것들만 가득차게 되어 버렸어요.
어떤 추억은 미화되기도 해요. 그것은 아마도 '조금 더 아름다워질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것을 추억하는 당사자의 바램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테죠. 하지만 내게는 이런 추억이 전혀 없어요. 난, '추억한다' 라는 것에서 '즐겁지 않은 일'을 추억한 적이 없어요. 내가 추억한 추억은, 모두가 정말 즐겁고 행복했던 것이었어요. 어쩌면 이것이, 나에게 추억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는지도 몰라요.
어디에 있었나요?
내가 말하는 추억은, 나에게는 엄청나게 특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쉽게 떠올릴 수가 없어요. 분명히 난 몇몇 일들을 마치 사진처럼 기억하곤 해요.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추억은, 이 엉망인 그림은 하나같이 불투명해요. 의도적으로 일그러뜨린 그림마냥, 그렇게 어렴풋하게.
난 이것이 '미화되지 않기 위해서' 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건 그다지 기분좋은 일은 아니에요. 결과적으로 난 그 추억들을 '당시의 느낌과 생각, 의식' 으로만 희미하게 기억할 뿐이에요. 초점이 맞지 않는 몇 장의 사진, 아니 그림과 함께...
분명히 추억은 내 머릿속에 있었어요. 하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역시나 찾을수가 없어요. 난 다만 그것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을 쓰다듬어 볼 수 있었을 따름이에요. 마치 1,000 개의 퍼즐 조각 중 단 하나의 조각만 남은 것 처럼. 나머지 조각들을 찾을 수 없어서 고작 하나 남은 조각에 깊은 애착을 가진 것 마냥.
조각
난 나도 모르게 사소한 것들에 대해 재미난 생각을 하곤 해요. 이것들은, 어떤 때에는 나도 모르게 나즈막히 말해버릴 때도 있고, 어떤 때에는 말도 안되는 것들이 연상되어서 실없이 웃기도 해요.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내게는 잃어버린 퍼즐 조각처럼 소중해요.
난, 이 그림을 복원할 수는 없어요. 아니, 복원하려고도 했었지만 복원한 것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낀 순간부터 포기했다는 편이 맞을 거예요. 그래서 난 이 작은 느낌들을 퍼즐 조각이라고 생각해요. 이 조각들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추억의 일부이고, 이것들이 언젠가는 퍼즐을 맞추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 한 조각 한 조각이.
누구나가 하나쯤은 있을 거예요. 아주 간단한 것에서부터 복잡한 것까지. 이건 "네가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지만 '머저리' 라는 말은 못 참아" 같은 영화 속 누군가의 대사와 같은거예요. 다른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오는 것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들.
내게는 '추억' 이에요. 그리고 이 '추억'을 떠올리면 행복해져요. 행복하다는 것은 정말 추상적인 감정이지만, 난 추억을 추억할 때 가장 행복해져요. 그래서 추억과 행복, 이 두 가지에 격하게 반응해요.
바뀌는 건가요?
맞아요. 내가 기억하는 추억들은, 추억 그 자체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체를 뭉떵그려 놓은 추상화 몇 장과... 말도 안되는 작은 퍼즐 조각이 전부예요. 그래서 나에게 추억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그 퍼즐 조각을 떠올릴 수 있을 뿐, 그 때의 느낌을 다시금 받을 수는 없는 거예요. '아 정말 즐거웠어' 라고 느꼈던 것은 기억나요. 하지만 그 즐거운 느낌을 다시 '느낄' 수는 없는 거예요.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그 순간의 즐거움이나 행복감을 다시 느낄 수 있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잠들지 못했던 적이 많았죠. 난 기억해내려 발버둥을 치지만, 기억은 그리 만만한 녀석이 아니더군요.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텐데, 분명히 머릿 속 어디엔가 있을텐데,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그러다가 '내가 왜 이것을 기억하려 하는거야?' 라는 의문에 부딪혔어요.
그리고... 그리고... '어쩌면... 어쩌면 말야... 이것이 이유인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지금은?
어떻게 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내가 어떻게 해서 그 추억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지, 다른 사람들이 추억을 추억하듯이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난 엄청나게 발버둥 쳤지만, 결국 방법을 찾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우연히, 그 수많은 우연이 겹치고 나서야, '촉매'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이 때는 이미 발버둥마저 포기한 상태였어요. 대부분의 문제들 처럼. 발버둥 치면 칠수록 멀어졌던 거예요.
처음에는 단순히 기억의 단편일 뿐이었어요. 그 시절에 듣던 음악에서, 그 시절의 자그마한 기억을 떠올리는, 그런 소박한 것이었어요. 내가 아는 음악은, 묘하게도 이런 힘이 있었으니까.
그러다가 난, 어떤 영화를 봤어요. 그 영화에서 난, 감동적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어요. 그리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본 몇 편의 영화들에서, 난 이 영화들이 내게는 '추억' 과 '행복' 의 촉매라는 것을 알았어요. 영화속의 그들은, 이유를 알 수 없이 살아가지만... 추억에서 행복을 느끼고, 그 관성으로 또 다른 추억과 행복을 만들어요.
하지만 내게는 너무나도 멋진 이 '영화'라는 것이... 내게는 포석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전부가 된 것은 아니었어요. 영화는 스스로가 너무 멋져서, 그래서 보고 듣는 이를 지배해 버려요. 난 영화에서 감동을 느끼지만, 영화속의 이야기는 결코 내 것이 아닌 거예요. 그 너무도 멋진 영화 속 나름의 세상, 그리고 그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나와 비슷한' 이야기 - 결국 그건 그들의 이야기일 뿐인 거예요.
하지만 이런 영화속에서 난, 마약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지금, 그 마약 중 가장 특별하고 강력한 마약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해요.
무엇인가요?
내가 처음으로 잃어버린 기억의 단편을 찾았던 것. 그것이 영화속 그들에게도 있었어요. 그리고 영화라는 것 전체를 감싸고 있기도 했죠.
녀석은 여지가 있어요. 완벽하지가 않아요. 어쩌면 완벽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아는 녀석은 그렇지가 않아요. 그래서 내가 아는 어떤 것과 닮아있어요.
녀석이 영화 속에서 다만 '배경음악' 일 뿐인 것 처럼, 내게도 '배경음악' 이 될 수가 있는 거예요. 내 이야기에도, 녀석이 들어올 수가 있는 거예요.
추억속의 그 순간에 녀석이 있었기에, 난 녀석을 통해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젠, 기억에서 '추억'으로 바뀌어 버렸어요.
왜 1979 인가요?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음악이 몇 몇 기억들을 떠올리게 해 준다는 걸 알았어요. 어떤 곡을 들으면, 그것을 촉매로 난 몇 가지의 일들을 기억하게 되어 버려요. 어쩌면 이건, 내가 나도 모르게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내게는 음악과 영화 이외의 '촉매'들도 있지만, 음악만큼 강력한 촉매는 없어요. 그래서 이것을 인지하기 시작한 무렵부터는 '되도록이면 좋은 기억'을 음악에 담으려 애썼어요. 예컨데 내가 말하는 '추억' 같은 것들 말이에요.
하지만 이건 내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었어요. 나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었기 때문에, 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문제는 이 기억이 반드시 좋은 기억만은 아니라는 점이에요. 처음에는 어떻게든 바꿔보려 애썼지만, 결국엔 그냥 포기해 버렸어요. 안되는 거니까. 흘러가는 대로 두자고.
그런데 말예요, 신기하게도 1979 라는 녀석은 달랐어요.
어땠나요?
음악은 간단하지가 않아요. 이상하게 들으면 들을수록 좋아지는 것들도 있고, 처음부터 강렬한 녀석들도 있어요. 하지만 1979 는 모든 면에서 조금 특별했어요. 그 말도 안되는 만남에서 부터, 이 곡의 제목이 '1979' 라는 것을 알게되었던 때 부터,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까지도.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난 한동안 까만 공간속에 홀로 남겨진 느낌이었어요. 그 온통 검은 공간속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명암이 전혀 없을 만큼 새까매서, 너무도 어지러워서 움직일 엄두조차 낼 수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냥 반짝거리는 몇 몇 것들이 앞에서 부터 날 스쳐 지나가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마치 우주속을 유영하듯이.
그리고 처음으로 1979 라는 제목을 찾아내 다시 들었던 이 곡에서, 난 '추억'을 느꼈어요. 그 퍼즐조각을 떠올린 것이 아니라, 추억속에서의 그 느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어요.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랐지만 정말 좋았어요. 아니, 영문 따윈 몰라도 전혀 관계 없었어요. 비록 상상일 뿐이지만 그렇게 가고싶었던 그 순간들에 어렴풋이 '다시' 가 봤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어요.
충분했어요.
변하지 않았나요?
아뇨, 변했어요. 난 언젠가는 1979 를 들으면서 느끼는 이런 감정들도 옅어질 거라 생각했어요. 대부분의 것들이 그렇듯이.
하지만 신기하게도 녀석은 이상하게 변했어요.
처음에는, '탈 것' 으로 변했어요. 난 탈것에 달린 좌석에 앉아있고, 내 옆으로는 넓지도 좁지도 않은 창이 있어요. 그리고 풍경이 앞에서 뒤로 지나가요. 가까이 있는 것은 빠르게, 멀리 있는 것들은 천천히.
그 풍경들에서 난, 내 추억을 봐요. 이젠 자세하게 느끼지 않아도 될 만큼, 그 만큼이나 행복한 것들이에요. 작고 사소한 것들은 가까이에, 정말 즐거웠던 것들은 멀리 그리고 천천히.
그리고 이젠, 창 밖으로 더 이상의 풍경이 지나가지 않아요. 아니, 어쩌면 지나가는 지도 몰라요. 문제는 나예요. 난 창 밖을 보지 않고 있어요. 그냥 편안한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고 있어요.
이젠 이것만으로도.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첫 만남이 특별했던 것 처럼, 신기하게도 내가 말하는 '추억' 이라는 것이 이 곡과 저절로 연결되어 버려요. 저절로
어떻게 생각해요?
과거에 집착한다거나... 즐거웠던 순간을 기억하는 건 어쩌면 '마약' 같은 것인지도 몰라요. 난 술이나 담배 같은 것들에서, 도박 같은 것에서 뭔가를 전혀 느낄 수 없지만 여기에서는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난 '아... 아마도 저들에게는 저것이 촉매인가 보다' 라는 생각을 할 뿐, 내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그렇잖아요. 내가 느끼는 것은, 아니 내가 상상하는 것은 다만 '탈 것' 과 '편안한 의자' 그리고 '또 하나의 나' 일 뿐이에요. 그 '또 하나의 내' 가 보는 것들은 모두 나에게 있었던 일이니까. 그 모든 것들이 정말로 있는 것들이니까. 그리고 정말로 즐거웠던 일들이니까.
아직도 그런가요?
아뇨. 이젠 달라요. 1979 는... 그 첫 만남이 특별했던 것 처럼, 또 다른 많은 것들을 나에게 주고 있어요. 여전히 변함없는 건, 정말 즐거운 일들이 이 곡과 함께 기억된다는 점이에요. 다만 달라진 것은, 만남이 반복되면서 나에게 조금씩의 여유가 생겼다는 점이에요. 덕분에 난, 추억속의 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어요.
그 많은 추억 속의 나는... 어찌된 일인지 점점 '관찰자'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어쩌면 난 내가 그토록 다시 가고 싶었던 '순간'에 충실하기 보다는, 나중에 그것을 '추억하기 좋게' 행동하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아니,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랬어요. 내게 온 변화는, 나에게는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 속에서의 난, 내 마음에 전혀 들지가 않는 모습이었어요. 난 '이 순간이 추억될 것' 같아서 그것을 애써 기억하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을 추억속에서 봤어요. 그리고 그것에 대해 실망했어요. 그래서 이젠, 돌아가려고 해요.
모든 것들
난 최선을 다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해서든 최선을 다하고 싶어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아니, 사실은 원래부터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렇잖아요. 답은 이미 알고 있지만, 그것을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것은 확인받고 싶기 때문이에요. 자신이 이미 정해버린 답은 바뀌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요.
난 '지나간 순간들'이 다시금 올 수 없기 때문에 그토록 추억하고 싶어해요. 그래서 그 순간들을 잊지 않으려 사소한 것들에 대한 느낌을 기억하고, 조금 더, 그리고 조금 더 꼼꼼하게 기억하려 애써요. 하지만 이 '기억하려 애쓰는 것' 이 기억됨으로 해서, 그 즐거웠던 순간들에 빛이 바래는 걸 느꼈어요. 나에게는 다시 오지 않을 순간들에, 그렇기에 다시 한 번 기억해 내면 그토록 행복해 하는 순간 속에서... 내게서만 이질감을 느꼈어요. 왜냐하면 난 이것이 추억될 것임을 알고 있는채로 행동했으니까.
변화
난 1979 덕에 다시 한 번 추억속에서 그 순간의 나를 느낄 수 있었어요. 내가 어떤 생각을 했었고, 어떤 것을 했었고, 어떤 사람들을 만났었고, 어떤 말을 했었고... 그리고 모든 사소한 것들 까지도.
난 이 느낌이 '어렴풋이 갖고 있었던 그 때의 느낌' 과 같았다는 것에 엄청난 희열을 느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추억속의 사람들이 하나도 다를바 없는 모습으로, 그리고 그 분위기, 그 느낌 그대로 있다는 것에 있는대로 신이 났어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내게는 추억 속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정말로' 만나도 추억과 똑같은 느낌의 사람들. 그래서 추억을 만들어주는 사람들. 그 많지 않은 사람들을 만난것에 난 로또에 당첨될 운을 모두 써버렸다고 생각해요. 아아... 왠지 약간 손해 같기는 해요.
하지만 '웡카의 초대권' 처럼, 한정판은 매력있는 거예요.
그렇기에
나에게 추억은, 그림이나 사진같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느낌 그 자체에요. 그래서 난 추억을 들춰 내려면 그 느낌들에 대한 생각을 떠올릴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1979 를 들으면, 그 느낌을 느낄 수가 있어요. '이런 느낌이었지' 라며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추억 속에서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굉장한 행복을 느껴요. 내가 만났던 그들은, 어느새 상상속에 있어요. 왜냐하면 그들과의 모든것이 내가 말하는 '추억'으로 기억되기 때문에. 나에게는 몇 장의 그림과 좋은 느낌으로 기억되기 때문에.
마치 누군가와 끓여먹던 라면처럼,
끝없이 이어지던 만담처럼,
시간가는 줄 몰랐던 수다처럼,
어김없이 달린 댓글처럼,
음흉하고 사악하고 악랄했던 게임처럼,
마치 행복한 영화처럼,
그리고 아련한 음악처럼.
당신은?
난 지금 묘한 느낌에 빠져 있어요. 내 주변은 온통 평평한 흰색이라, 난 어디가 어딘지를 구분할 수가 없어요. 움직이면 어지러워져요. 마치 1979 를 처음 들었던 그 때처럼.
그 때와는 밝기만 다를 뿐인데, 그 때와는 뭔가 달라요. 어쩌면 너무 밝아서인지도 모르지만, 난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을, 그 유영하는 느낌을 느낄 수가 없어요. 이곳의 밝음에, 반짝 거리는 것들이 묻혀서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리고 이 새로운 느낌이 주는 찰나의 여유 속에서, 그 멍~ 한 여유 속에서 난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솔직해 질 수 있었어요.
어쩌면 난 목표를 잃었었는지도 몰라요. 아니, 언제나 너무 소박한 목표를 갖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난 너무 자신에 대해서 엄격해요. 그래서 늘 하던대로 하는 경향이 있고, 애써 냉정하려 애쓰고, 여간해서는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쪽으로 생각해 버려요. 이 모든 걸, 당사자인 난 알고 있었을 거예요.
난 질서에서 안정을 찾아요. 그래서 정리된 것들을 좋아해요. 하지만 이것은 좋아하는 것일 뿐이지,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에요. 난 내가 미쳐있기를 바라고, 난 미쳐있는 동안에는 정리할 여유가 없어요. 지금의 난, 분명히 목표를 잃어버렸어요.
누군가에게.
이 글은 아마도, 내가 언제나 쓰던 글처럼,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일 거예요. 하지만 이 글은 여태까지의 글처럼 한 자리에서 뚝딱 하고 쓰여진 것은 아니에요.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에, 너무 좋은 사람들에 대한 글이니까. 그리고 몇 안되는 내 자신에 대한 글이니까.
난, 분명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어요. 하지만 이 변화는 내가 의도한 것이라 후회하지는 않아요. 마치 내게 일어난 대부분의 일처럼.
이젠, 또 다시 변할 것 같아요. 아마도 예전처럼. 물론 예전과 완전히 같지는 않겠죠. 하지만 예전보다 좋을 거란걸 확신할 수 있어요. 변화를 통해 예전의 내가 조금 더 좋았던 것 같으니까. 예전의 내가, 나 자신을 책임지기는 힘들어도 조금 더 솔직한 녀석이었던 것 같으니까. 그리고 새로운 목표가 생겼으니까.
마지막.
1979 를 좋아하는 사람은 은근히 많아요. 그 만큼이나 이 곡은 좋은 곡인가 봐요. 어쩌면 그들 중에도 나 같은 사람이 있을지 몰라요. 그들도 나름대로의 이유로 이 곡을 들으며 행복해하겠죠.
이 간단한 멜로디의 노래에, 이 성의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취해서 하는 목소리에, 그리고 어딘지 모를 아련함을 주는 분위기에, 빠르지도, 느리지도, 격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이 어중간한 노래에. 그렇게들...
Shakedown 1979
Cool kids never have the time
On a live wire right up off the street
You and I should meet
I don't even care to shake these zipper blues
Forgotten and absorbed into the earth below
사람들은 살아가요. 난 별의 별 것들에, 별 희한한 것들에, 정말 사소한 것들에 대해 의문을 품었고, 또 답을 찾아보곤 했었지만, 이것에 대한 이유는 아무리 궁리해 봐도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살아가는 것 같긴 해요. 하지만 나조차도, 내가 왜 살아가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난, 무엇을 위해 살고있고, 무엇 때문에 살고있고, 왜 계속 살아가려고 하는지를.
언젠가 '슐츠' 씨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어요.
"넌 왜 사냐?"
난 장난스럽게 '죽지 못해 살지요' 라는 어느 발췌구절로 얼버무렸어요. 하지만 한편으론, 내가 품은 의문이 나만의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대체 왜?
하필 지금인가요?
언젠가 '홀릭' 씨와 했던 대화가 문득 기억나요.
"우리가 지금 이카고 있는것도 안있나, 나중에는 추억으로 남겠제?"
그 말 한 마디가, 아니 그마저도 이제는 정말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어요. 언젠가는 추억이 될거라고 했던 말 조차도.
우연이 겹쳐서 지금이 있는 거겠죠. 그 수많았던 순간들은 아마도 결코 돌이킬 수 없을 거예요.
난 변했어요. 아니, 그렇게 느꼈어요. 그래서 홀릭씨에게 물었어요.
'내가 변한 것 같냐?'
홀릭씨는 그렇지 않다고 했어요. 그래서 확실해 졌어요. 난, 홀릭씨에게는 변함없는 나로 있었다라고.
하지만 변한 것 같은 느낌은 존재했고, 난 어디에서 그것을 느꼈는지를 찾아냈어요. 그리고 우연히도 지금, 내가 이렇게 되었던 때 처럼, 바로 그 때 처럼 몇몇 우연들이 겹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우연들에서 난, 다시금 변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어요. 아니, 변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어요. 그래서 난, 그 때는 못했던 일을 하고 싶은 거예요. 왜냐하면 변하기 전의 심정으로 남긴 글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왜 그랬는지 언제라도 알 수 있도록.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어떤 관계인가요?
1979 는, 어느틈엔가 이런 생각들을 할 때면 언제나 등장한 녀석이에요. 어렴풋이는... 아니 언젠가는 이것에 대해서도 글을 쓸 것 같았지만, 그것이 지금이 될 줄은 몰랐어요. 왜냐하면 이건 너무 복잡한 문제였거든요. 시간이 나면 이것에 대해 생각하곤 했었는데, 언제나 답을 찾지 못했어요. 어쩌면 난 답을 찾으려 이 글을 쓰고있는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난 아직 답을 찾지 못한 거예요.
사람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대요. 전 처음에는 이것에 대해 회의적이었어요. 왜냐하면 '살아가는 이유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살려고 발버둥치는데, 고작 혼자라는 이유로 살 수 없다니!' 정도로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어요. 지금은 아마 다르게 생각 할 거예요.
아마도 처음부터 내가 혼자였다면, 혼자 살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처음부터 그랬다면.
갑자기 무슨?
진리는 없어요. 답이란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녀석이라 도무지 확신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인지 내게는, 대부분의 것들이 미결로 남아요.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이것들에 대해 집착하느냐면, 그건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지금 중요한 건 답을 찾는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이런 느낌의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이 글을, 난 아마 '가장 마음에 드는 글' 이 되게 하고 싶은 거예요. 이젠 더 이상 '모르겠다' 따위로 남지 않게끔. 정말 나같은 글로, 나와 같은 느낌으로, 내가 느껴지게, 그렇게 조금씩.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가요?
그러니까 난, 역시나 나에 대해서 쓰기는 어색해요. 하지만 1979 라는 것에 대해서는, 지금 같아서는 키보드가 부숴질 때까지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것에 대해 말하려 해요. 내게는 96 만큼이나 특별한 숫자.
알고 있나요?
1979 는 Smashing Pumpkins 라는 밴드의 그저그런 노래입니다. 나름대로 인기는 있지만 폭발적인 인기는 아니었어요. 아니, 설령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더라도 흥에 겨워 절로 머리를 흔들만한 곡도, 연주와 가창력에 감탄하며 들을 수 있는 곡도 아니거든요. 그래서인지 이 곡을 좋아하거나, 이 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 역시 그저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는, 나 역시 그저 흥얼거리는... 그런 곡이랍니다.
하지만 말이에요, 이 분위기에 압도당할 정도의 힘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기술도 없는 이 노래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어요. 그 누군가는 아마도 내가 정말 잘 아는 녀석일 텐데, 지금부터는 이 녀석의 이야기를 할까 해요.
처음?
처음에는 말보다는 침묵에서 발견한 진솔한 느낌 때문이었어요. 뭔가를 말하려다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있구나 라는 걸 느낄 때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이런 말도 안되는 이유였어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편해져 버렸어요. 어쩌면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였다고도 할 수 있어요. 원래가 조용한 녀석이었다면, 아무런 말이 없어도 '녀석은 별 일 없이 잘 살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솔직하게는, 편해서였어요. 난 두 가지 모두를 해봤으니까, 침묵이 편하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남을 배려한 행동' 따위의 예쁘장한 이유가 아니었던 거예요.
지금?
숨길 수 없어요.
무슨 생각에서 나온 것인지... 라는 것은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답이 없는 문제예요. 난 단지 나일 뿐이고, 네가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느낌은 달라요. 이 느낌이란 것은... 숨길수가 없어요. 그것이 경험이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건 간에, 분명히 지금 이 순간에도 느낌이라거나 분위기는 '머리를 굴려서 나온 답' 보다는 조금 더 솔직해요. 그리고 난 그 느낌을 좋아해요.
숨길 수 없어요.
난 내가 아닌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나일 지언정, 내 마음에 드는 나는 아니었기에, 그렇게 난 내가 싫었어요. 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내 느낌이 아니었기에. 그리고 나에게만큼은 숨길 수 없었어요.
아이러니
내가 말하는 진실이라면, 전해졌을지도 몰라요. 순전히 제멋대로인 내 생각에 따르면, 저건 무슨 짓을 해도 느껴진다고 하니까.
하지만 언제나 답이 없었던 나라면, 이번에도 역시 답이 없을 거예요. 난 내가 말하는 것을 확신 할 수 없어요. 그래서 기껏 찾아낸 답 역시, 답이 아니기에 난 느낌을 믿을 수 밖에 없었어요. 요컨데 사실대로 얘기하자면, 복잡한 과정은 모두 버려버리고 그냥 본능에 충실한 거예요.
이 말도 안되는 아이러니 속에서, 난 1979 라는 노래를 만났어요.
기억
이 신비한 것. 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리 궁리해 봐도 모르겠어요. 난 왜 기억하고 있을까?
하지만 이 기억 한구석엔, 이게 있어요. 내가 그리도 찾으려고 발버둥 쳤던 것.
어디에 있나요?
단 하나의 문제점은 바로 이게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다는 점이에요. 물론 그것이 기억나긴 해요. 분명 기억속에 있긴 해요. 하지만 찾을수가 없어요. 아니, 찾았다고 해도, 완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찾았다고 할 수 없었어요. 어쩌면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인지,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도무지 난 만족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찾은 그것에.
나, 그리고 모두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셔요. 하지만 나에게 술은, 그저 맛 없는 물일 뿐이에요. 괜시리 화장실만 들락날락하게 만드는, 그런 녀석일 뿐이에요. 어쩌다 보니 난, 또 다시 문제를 만난 거예요.
'사람들은 왜 이 맛없는 걸 먹는거지?'
수 없이 찾아낸 작은 이유들을 팽겨쳐버리고, 내가 생각한 가장 그럴듯한 이유는 이거였어요.
'그들은 술을 통해서 내가 찾으려 했던 것을 찾았구나'
왜냐하면 나 역시, 술을 먹어서 그것을 찾을 수 있다면, 죽을 때 까지도 마실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사실 내가 찾으려는 것과 같은게 아니라도 상관 없었어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술을 통해 찾은 것이, 내가 찾으려던 것 만큼이나 그들 자신에게는 전부일테니까.
무엇인가요?
내게 이것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요. 다른 사람의 그것은, 가끔씩은 제 욕심에 미화되어 버리기도 하고,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보는 것 처럼 선명하기도 해요. 어쩌면 이것이 내것이 아니라서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분명 내가 생각하는 느낌과는 달라요.
하지만 나에게 이건... 그 자체에요. 내겐 이것들이 도무지 선명하지가 않아요. 완전히 실패해버린 추상화 처럼, 그렇게 말도 안되는 모습이에요. 그래서 난 이것을 '기억해내는 것' 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난 이것을 그리도 좋아하지만, 내게 이것은 이름난 화가의, 도무지 그림이 맞는지 아닌지 조차 분간할 수 없는 그림처럼 느껴질 뿐이에요.
하지만 이 엉망인 그림이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것이 '내가 찾던 것'이라는 걸 알았을 때.
어땠나요?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정말 미친듯이 기뻤어요. 난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돌아간다는 것. 같은 것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다는 것. 아니 불확실했지만, 그것을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 그것에 전율했어요. 막시무스가 마지막 순간에, 그토록 그리던 가족에게 가던 순간처럼. 가족으로 향하는 길에서 그의 손끝에 스친 풀처럼, 그렇게...
내가 매 순간 받았던 느낌들은, 너무 많아서인지는 몰라도 금방 잊혀져버려요. 하긴, 그 작은 것들에서 받은 느낌이 그다지 중요할 거라는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그런 것들을 쉽게 잊었어요.
하지만, 내가 돌아간 그 순간에서의 느낌은...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 작은 것들에서 난 '예전과 다를바 없구나!' 라는 감탄을 하는 거예요. 비록 기억속, 아니 상상속일 지언정.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겨우 찾은 이것을 '추억' 이라고 말해요.
추억
다른 사람의 추억은 어찌 되어도 좋아요. 나에게 추억은, 추억 그 자체예요. 그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추억이란 단순히 지나간 일에 불과해요. 하지만 난 나도 모르게 이 '추억' 이란 것에 엄청나게 좋은 것들만 가득차게 되어 버렸어요.
어떤 추억은 미화되기도 해요. 그것은 아마도 '조금 더 아름다워질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것을 추억하는 당사자의 바램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테죠. 하지만 내게는 이런 추억이 전혀 없어요. 난, '추억한다' 라는 것에서 '즐겁지 않은 일'을 추억한 적이 없어요. 내가 추억한 추억은, 모두가 정말 즐겁고 행복했던 것이었어요. 어쩌면 이것이, 나에게 추억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는지도 몰라요.
어디에 있었나요?
내가 말하는 추억은, 나에게는 엄청나게 특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쉽게 떠올릴 수가 없어요. 분명히 난 몇몇 일들을 마치 사진처럼 기억하곤 해요.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추억은, 이 엉망인 그림은 하나같이 불투명해요. 의도적으로 일그러뜨린 그림마냥, 그렇게 어렴풋하게.
난 이것이 '미화되지 않기 위해서' 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건 그다지 기분좋은 일은 아니에요. 결과적으로 난 그 추억들을 '당시의 느낌과 생각, 의식' 으로만 희미하게 기억할 뿐이에요. 초점이 맞지 않는 몇 장의 사진, 아니 그림과 함께...
분명히 추억은 내 머릿속에 있었어요. 하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역시나 찾을수가 없어요. 난 다만 그것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을 쓰다듬어 볼 수 있었을 따름이에요. 마치 1,000 개의 퍼즐 조각 중 단 하나의 조각만 남은 것 처럼. 나머지 조각들을 찾을 수 없어서 고작 하나 남은 조각에 깊은 애착을 가진 것 마냥.
조각
난 나도 모르게 사소한 것들에 대해 재미난 생각을 하곤 해요. 이것들은, 어떤 때에는 나도 모르게 나즈막히 말해버릴 때도 있고, 어떤 때에는 말도 안되는 것들이 연상되어서 실없이 웃기도 해요.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내게는 잃어버린 퍼즐 조각처럼 소중해요.
난, 이 그림을 복원할 수는 없어요. 아니, 복원하려고도 했었지만 복원한 것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낀 순간부터 포기했다는 편이 맞을 거예요. 그래서 난 이 작은 느낌들을 퍼즐 조각이라고 생각해요. 이 조각들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추억의 일부이고, 이것들이 언젠가는 퍼즐을 맞추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 한 조각 한 조각이.
누구나가 하나쯤은 있을 거예요. 아주 간단한 것에서부터 복잡한 것까지. 이건 "네가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지만 '머저리' 라는 말은 못 참아" 같은 영화 속 누군가의 대사와 같은거예요. 다른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오는 것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들.
내게는 '추억' 이에요. 그리고 이 '추억'을 떠올리면 행복해져요. 행복하다는 것은 정말 추상적인 감정이지만, 난 추억을 추억할 때 가장 행복해져요. 그래서 추억과 행복, 이 두 가지에 격하게 반응해요.
바뀌는 건가요?
맞아요. 내가 기억하는 추억들은, 추억 그 자체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체를 뭉떵그려 놓은 추상화 몇 장과... 말도 안되는 작은 퍼즐 조각이 전부예요. 그래서 나에게 추억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그 퍼즐 조각을 떠올릴 수 있을 뿐, 그 때의 느낌을 다시금 받을 수는 없는 거예요. '아 정말 즐거웠어' 라고 느꼈던 것은 기억나요. 하지만 그 즐거운 느낌을 다시 '느낄' 수는 없는 거예요.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그 순간의 즐거움이나 행복감을 다시 느낄 수 있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잠들지 못했던 적이 많았죠. 난 기억해내려 발버둥을 치지만, 기억은 그리 만만한 녀석이 아니더군요.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텐데, 분명히 머릿 속 어디엔가 있을텐데,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그러다가 '내가 왜 이것을 기억하려 하는거야?' 라는 의문에 부딪혔어요.
그리고... 그리고... '어쩌면... 어쩌면 말야... 이것이 이유인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지금은?
어떻게 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내가 어떻게 해서 그 추억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지, 다른 사람들이 추억을 추억하듯이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난 엄청나게 발버둥 쳤지만, 결국 방법을 찾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우연히, 그 수많은 우연이 겹치고 나서야, '촉매'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이 때는 이미 발버둥마저 포기한 상태였어요. 대부분의 문제들 처럼. 발버둥 치면 칠수록 멀어졌던 거예요.
처음에는 단순히 기억의 단편일 뿐이었어요. 그 시절에 듣던 음악에서, 그 시절의 자그마한 기억을 떠올리는, 그런 소박한 것이었어요. 내가 아는 음악은, 묘하게도 이런 힘이 있었으니까.
그러다가 난, 어떤 영화를 봤어요. 그 영화에서 난, 감동적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어요. 그리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본 몇 편의 영화들에서, 난 이 영화들이 내게는 '추억' 과 '행복' 의 촉매라는 것을 알았어요. 영화속의 그들은, 이유를 알 수 없이 살아가지만... 추억에서 행복을 느끼고, 그 관성으로 또 다른 추억과 행복을 만들어요.
하지만 내게는 너무나도 멋진 이 '영화'라는 것이... 내게는 포석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전부가 된 것은 아니었어요. 영화는 스스로가 너무 멋져서, 그래서 보고 듣는 이를 지배해 버려요. 난 영화에서 감동을 느끼지만, 영화속의 이야기는 결코 내 것이 아닌 거예요. 그 너무도 멋진 영화 속 나름의 세상, 그리고 그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나와 비슷한' 이야기 - 결국 그건 그들의 이야기일 뿐인 거예요.
하지만 이런 영화속에서 난, 마약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지금, 그 마약 중 가장 특별하고 강력한 마약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해요.
무엇인가요?
내가 처음으로 잃어버린 기억의 단편을 찾았던 것. 그것이 영화속 그들에게도 있었어요. 그리고 영화라는 것 전체를 감싸고 있기도 했죠.
녀석은 여지가 있어요. 완벽하지가 않아요. 어쩌면 완벽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아는 녀석은 그렇지가 않아요. 그래서 내가 아는 어떤 것과 닮아있어요.
녀석이 영화 속에서 다만 '배경음악' 일 뿐인 것 처럼, 내게도 '배경음악' 이 될 수가 있는 거예요. 내 이야기에도, 녀석이 들어올 수가 있는 거예요.
추억속의 그 순간에 녀석이 있었기에, 난 녀석을 통해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젠, 기억에서 '추억'으로 바뀌어 버렸어요.
왜 1979 인가요?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음악이 몇 몇 기억들을 떠올리게 해 준다는 걸 알았어요. 어떤 곡을 들으면, 그것을 촉매로 난 몇 가지의 일들을 기억하게 되어 버려요. 어쩌면 이건, 내가 나도 모르게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내게는 음악과 영화 이외의 '촉매'들도 있지만, 음악만큼 강력한 촉매는 없어요. 그래서 이것을 인지하기 시작한 무렵부터는 '되도록이면 좋은 기억'을 음악에 담으려 애썼어요. 예컨데 내가 말하는 '추억' 같은 것들 말이에요.
하지만 이건 내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었어요. 나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었기 때문에, 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문제는 이 기억이 반드시 좋은 기억만은 아니라는 점이에요. 처음에는 어떻게든 바꿔보려 애썼지만, 결국엔 그냥 포기해 버렸어요. 안되는 거니까. 흘러가는 대로 두자고.
그런데 말예요, 신기하게도 1979 라는 녀석은 달랐어요.
어땠나요?
음악은 간단하지가 않아요. 이상하게 들으면 들을수록 좋아지는 것들도 있고, 처음부터 강렬한 녀석들도 있어요. 하지만 1979 는 모든 면에서 조금 특별했어요. 그 말도 안되는 만남에서 부터, 이 곡의 제목이 '1979' 라는 것을 알게되었던 때 부터,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까지도.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난 한동안 까만 공간속에 홀로 남겨진 느낌이었어요. 그 온통 검은 공간속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명암이 전혀 없을 만큼 새까매서, 너무도 어지러워서 움직일 엄두조차 낼 수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냥 반짝거리는 몇 몇 것들이 앞에서 부터 날 스쳐 지나가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마치 우주속을 유영하듯이.
그리고 처음으로 1979 라는 제목을 찾아내 다시 들었던 이 곡에서, 난 '추억'을 느꼈어요. 그 퍼즐조각을 떠올린 것이 아니라, 추억속에서의 그 느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어요.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랐지만 정말 좋았어요. 아니, 영문 따윈 몰라도 전혀 관계 없었어요. 비록 상상일 뿐이지만 그렇게 가고싶었던 그 순간들에 어렴풋이 '다시' 가 봤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어요.
충분했어요.
변하지 않았나요?
아뇨, 변했어요. 난 언젠가는 1979 를 들으면서 느끼는 이런 감정들도 옅어질 거라 생각했어요. 대부분의 것들이 그렇듯이.
하지만 신기하게도 녀석은 이상하게 변했어요.
처음에는, '탈 것' 으로 변했어요. 난 탈것에 달린 좌석에 앉아있고, 내 옆으로는 넓지도 좁지도 않은 창이 있어요. 그리고 풍경이 앞에서 뒤로 지나가요. 가까이 있는 것은 빠르게, 멀리 있는 것들은 천천히.
그 풍경들에서 난, 내 추억을 봐요. 이젠 자세하게 느끼지 않아도 될 만큼, 그 만큼이나 행복한 것들이에요. 작고 사소한 것들은 가까이에, 정말 즐거웠던 것들은 멀리 그리고 천천히.
그리고 이젠, 창 밖으로 더 이상의 풍경이 지나가지 않아요. 아니, 어쩌면 지나가는 지도 몰라요. 문제는 나예요. 난 창 밖을 보지 않고 있어요. 그냥 편안한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고 있어요.
이젠 이것만으로도.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첫 만남이 특별했던 것 처럼, 신기하게도 내가 말하는 '추억' 이라는 것이 이 곡과 저절로 연결되어 버려요. 저절로
어떻게 생각해요?
과거에 집착한다거나... 즐거웠던 순간을 기억하는 건 어쩌면 '마약' 같은 것인지도 몰라요. 난 술이나 담배 같은 것들에서, 도박 같은 것에서 뭔가를 전혀 느낄 수 없지만 여기에서는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난 '아... 아마도 저들에게는 저것이 촉매인가 보다' 라는 생각을 할 뿐, 내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그렇잖아요. 내가 느끼는 것은, 아니 내가 상상하는 것은 다만 '탈 것' 과 '편안한 의자' 그리고 '또 하나의 나' 일 뿐이에요. 그 '또 하나의 내' 가 보는 것들은 모두 나에게 있었던 일이니까. 그 모든 것들이 정말로 있는 것들이니까. 그리고 정말로 즐거웠던 일들이니까.
아직도 그런가요?
아뇨. 이젠 달라요. 1979 는... 그 첫 만남이 특별했던 것 처럼, 또 다른 많은 것들을 나에게 주고 있어요. 여전히 변함없는 건, 정말 즐거운 일들이 이 곡과 함께 기억된다는 점이에요. 다만 달라진 것은, 만남이 반복되면서 나에게 조금씩의 여유가 생겼다는 점이에요. 덕분에 난, 추억속의 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어요.
그 많은 추억 속의 나는... 어찌된 일인지 점점 '관찰자'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어쩌면 난 내가 그토록 다시 가고 싶었던 '순간'에 충실하기 보다는, 나중에 그것을 '추억하기 좋게' 행동하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아니,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랬어요. 내게 온 변화는, 나에게는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 속에서의 난, 내 마음에 전혀 들지가 않는 모습이었어요. 난 '이 순간이 추억될 것' 같아서 그것을 애써 기억하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을 추억속에서 봤어요. 그리고 그것에 대해 실망했어요. 그래서 이젠, 돌아가려고 해요.
모든 것들
난 최선을 다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해서든 최선을 다하고 싶어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아니, 사실은 원래부터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렇잖아요. 답은 이미 알고 있지만, 그것을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것은 확인받고 싶기 때문이에요. 자신이 이미 정해버린 답은 바뀌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요.
난 '지나간 순간들'이 다시금 올 수 없기 때문에 그토록 추억하고 싶어해요. 그래서 그 순간들을 잊지 않으려 사소한 것들에 대한 느낌을 기억하고, 조금 더, 그리고 조금 더 꼼꼼하게 기억하려 애써요. 하지만 이 '기억하려 애쓰는 것' 이 기억됨으로 해서, 그 즐거웠던 순간들에 빛이 바래는 걸 느꼈어요. 나에게는 다시 오지 않을 순간들에, 그렇기에 다시 한 번 기억해 내면 그토록 행복해 하는 순간 속에서... 내게서만 이질감을 느꼈어요. 왜냐하면 난 이것이 추억될 것임을 알고 있는채로 행동했으니까.
변화
난 1979 덕에 다시 한 번 추억속에서 그 순간의 나를 느낄 수 있었어요. 내가 어떤 생각을 했었고, 어떤 것을 했었고, 어떤 사람들을 만났었고, 어떤 말을 했었고... 그리고 모든 사소한 것들 까지도.
난 이 느낌이 '어렴풋이 갖고 있었던 그 때의 느낌' 과 같았다는 것에 엄청난 희열을 느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추억속의 사람들이 하나도 다를바 없는 모습으로, 그리고 그 분위기, 그 느낌 그대로 있다는 것에 있는대로 신이 났어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내게는 추억 속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정말로' 만나도 추억과 똑같은 느낌의 사람들. 그래서 추억을 만들어주는 사람들. 그 많지 않은 사람들을 만난것에 난 로또에 당첨될 운을 모두 써버렸다고 생각해요. 아아... 왠지 약간 손해 같기는 해요.
하지만 '웡카의 초대권' 처럼, 한정판은 매력있는 거예요.
그렇기에
나에게 추억은, 그림이나 사진같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느낌 그 자체에요. 그래서 난 추억을 들춰 내려면 그 느낌들에 대한 생각을 떠올릴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1979 를 들으면, 그 느낌을 느낄 수가 있어요. '이런 느낌이었지' 라며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추억 속에서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굉장한 행복을 느껴요. 내가 만났던 그들은, 어느새 상상속에 있어요. 왜냐하면 그들과의 모든것이 내가 말하는 '추억'으로 기억되기 때문에. 나에게는 몇 장의 그림과 좋은 느낌으로 기억되기 때문에.
마치 누군가와 끓여먹던 라면처럼,
끝없이 이어지던 만담처럼,
시간가는 줄 몰랐던 수다처럼,
어김없이 달린 댓글처럼,
음흉하고 사악하고 악랄했던 게임처럼,
마치 행복한 영화처럼,
그리고 아련한 음악처럼.
당신은?
난 지금 묘한 느낌에 빠져 있어요. 내 주변은 온통 평평한 흰색이라, 난 어디가 어딘지를 구분할 수가 없어요. 움직이면 어지러워져요. 마치 1979 를 처음 들었던 그 때처럼.
그 때와는 밝기만 다를 뿐인데, 그 때와는 뭔가 달라요. 어쩌면 너무 밝아서인지도 모르지만, 난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을, 그 유영하는 느낌을 느낄 수가 없어요. 이곳의 밝음에, 반짝 거리는 것들이 묻혀서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리고 이 새로운 느낌이 주는 찰나의 여유 속에서, 그 멍~ 한 여유 속에서 난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솔직해 질 수 있었어요.
어쩌면 난 목표를 잃었었는지도 몰라요. 아니, 언제나 너무 소박한 목표를 갖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난 너무 자신에 대해서 엄격해요. 그래서 늘 하던대로 하는 경향이 있고, 애써 냉정하려 애쓰고, 여간해서는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쪽으로 생각해 버려요. 이 모든 걸, 당사자인 난 알고 있었을 거예요.
난 질서에서 안정을 찾아요. 그래서 정리된 것들을 좋아해요. 하지만 이것은 좋아하는 것일 뿐이지,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에요. 난 내가 미쳐있기를 바라고, 난 미쳐있는 동안에는 정리할 여유가 없어요. 지금의 난, 분명히 목표를 잃어버렸어요.
누군가에게.
이 글은 아마도, 내가 언제나 쓰던 글처럼,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일 거예요. 하지만 이 글은 여태까지의 글처럼 한 자리에서 뚝딱 하고 쓰여진 것은 아니에요.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에, 너무 좋은 사람들에 대한 글이니까. 그리고 몇 안되는 내 자신에 대한 글이니까.
난, 분명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어요. 하지만 이 변화는 내가 의도한 것이라 후회하지는 않아요. 마치 내게 일어난 대부분의 일처럼.
이젠, 또 다시 변할 것 같아요. 아마도 예전처럼. 물론 예전과 완전히 같지는 않겠죠. 하지만 예전보다 좋을 거란걸 확신할 수 있어요. 변화를 통해 예전의 내가 조금 더 좋았던 것 같으니까. 예전의 내가, 나 자신을 책임지기는 힘들어도 조금 더 솔직한 녀석이었던 것 같으니까. 그리고 새로운 목표가 생겼으니까.
마지막.
1979 를 좋아하는 사람은 은근히 많아요. 그 만큼이나 이 곡은 좋은 곡인가 봐요. 어쩌면 그들 중에도 나 같은 사람이 있을지 몰라요. 그들도 나름대로의 이유로 이 곡을 들으며 행복해하겠죠.
이 간단한 멜로디의 노래에, 이 성의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취해서 하는 목소리에, 그리고 어딘지 모를 아련함을 주는 분위기에, 빠르지도, 느리지도, 격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이 어중간한 노래에. 그렇게들...
Shakedown 1979
Cool kids never have the time
On a live wire right up off the street
You and I should meet
I don't even care to shake these zipper blues
Forgotten and absorbed into the earth be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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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쓴 글이, 내가 모르는 곳에,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인용되고 싸질러지는 것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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