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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휴가 때, 실패한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누워서 스타리그 보기' 였다. 이번 휴가는 그래서 금요일이 휴가날짜의 중간 즈음에 배치되게 만들었다.
















젠장 또 못봤다. 어차피 시즌도 끝났으니 조 지명식이라도 했으려나? 여튼 또 실패다. 아...
















버스를 탔다. 손잡이를 붙잡고 서 있었는데, 정거장에서 웬 할아버지 한 분이 탔다. 데님 재킷의 깃을 바짝 세우고서 말이다.



내게로 다가온다. 어어 어어 어엇
내 앞에 앉았다. 젠잔 자리가 비어 있었구나!


우연찮게 관찰할 기회가 생겼다. 낡은 스핏파이어. 되게 구식으로 생겼다. 그런데 뭔가 포스가 느껴진다. 오오오오

청재킷. 핏이 제대로다. '어라?' 라는 생각을 했다. 보통이라면 리바이스 타입의 조금은 펑펑한 재킷일 텐데. 아주 어깨선이 제대로 어깨에 걸려있는 데다 소매가 슬림하다. 무지 현대적인 핏이다. 게다가 소매를 한 단 접어서 단추를 잠궜다. 전형적인 80년대식이다. 꼿꼿이 세운 깃까지 말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이런 말씀을 했었다.

"청재킷의 깃은 세우라고 달린 기다."


내 궁금증은 두 가지였다. 이 어르신이 입고계신 재킷이, 왜 이렇게 세련된 라인인지, 이 몸에 꼭 맞는 사이즈는 직접 고른 '센스' 인지.


궁금증이 더욱 커져 갈 무렵, 꼿꼿이 선 깃 뒷부분에서 눈에 익은 재봉선을 하나 발견했다. 그리고 왠지 낯익은 크기의 딱지가 붙어있을 것 같은 네모난 재봉선을 등에서 발견했다.

'설마' 라고 생각하며 슬쩍슬쩍 앞 부분을 살펴봤다. 가슴 주머니 윗쪽 봉제선이 직선인 걸로 봐서 '리' 는 아닌가 보다. 가슴 주머니에서 나오는 두 줄의 봉제선이 사선인 걸로 봐서는 기본적인 스타일이다. 그런데 '움찔' 했다. 주머니 윗 쪽의 택을 발견했다. 사각형이다. 꽤나 길다. 회색이다. 회색이면 90년대...

글씨를 읽으려고 요리조리 쇼를 했다. 결국엔 읽었다. 헐...

Calvin Klein Jeans 라고 써 있다. 이 어르신 얼핏 보기에도 칠순 정도인데 말이다. 옷차림도 젊고 얼굴도 그런데로 동안이라 조금 젊어 보이는데, '젊어 보이는' 분위기를 감지했다. 트하...적어도 60대로 보인다. 게다가 뿔테 안경까지 끼고 계신다.


대단한 사람을 만났다.
아버지 세대에서도 데님 재킷은 커녕 청바지 조차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옷차림은 아니다. 물론 직업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지간 해서는 '평상복' 차림에서는... 아니다.

아버지는 청... 음... 청이라고 하면 파란 데님이 아니면 해당이 되지 않으니 Jean 이라고 해야겠다. 진에 굉장한 애착을 갖고 계신다. 대략 30 여년을 진과 함께 하신 아버지 조차도 최근에 등장한 '슬림한 라인' 의 청재킷은 없다. 그보다는 전통적인 형태의 것을 좋아 하신다. 물론 기장은 짧은 것을 선호하지만.

아버지가 가장 선호하던 브랜드가 'Guess' 였는데, 90년대 당시에는 라이센스로 한국에서 생산했었기에 슬림한 라인은 없었다. 대세가 그랬으니까. 다만 이 때의 게스는 엉덩이에 붙은 역삼각형 로고가 섹시했는데, 지금은 사라져 버렸다. 에효...




우연찮게도 같은 정류장에 내리게 되었다. 일부러 살짜쿵 늦게 내렸다. 다시금 봐도 역시... 제대로 몸에 찰싹 붙어있다. 손자의 옷을 몰래 입고 나오신 걸까... 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뭐... 별 쓰잘데기 없는 것에 굉장한 의미를 부여하긴 했지만, 그만큼 애정이 있어서 그러는 거다. 요즘 잘나가는 쎄븐 무슨 30만원짜리 보다는 엉덩이에 박힌 역 삼각형이 더 섹시하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브룩 쉴즈가 노팬티로 입은 청바지가 더 섹시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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