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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1월 3일 토요일. 심심해서 보낸 내 문자 한 통으로 부터 그것은 시작되었다.




[브로 블랙달리야 보러 가자]




이 문자의 의미는 이거였다.

[브로 네놈은 구미에 있으니 영화를 같이 보려면 대구로 올라와야겠지. 게다가 녀석은 아직 시험 기간이니 어찌되었건 간에 이 문자는 염장률 70% 이상은 보장된다. 후후훗. 나의 승리인가.]


그런데 날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다음주화요일오후에갈까도싶은데 수요일에올라오고]
[그날나도꼭보고싶은게있다! 원스보고싶다!]




내가 당한건가... 크윽.


그 뒤로 원스에 대해 한동안 물어봤는데, 감독이 누구며 어떤 배우가 나오며 등을 줄기차게 물었다. 나로서는 예상범위 밖에 있던 영화였기 때문에 일단 인터넷이 안되는 퇴근길 시점에서는 녀석을 닥달하는 수 밖에 없다.


[원스가 머니?]
[영화~다 그거그날아님못본다 볼래?]
[감독 누구니?]
[이름모른다 음악조낸좋다]
[누구 나오니?]
[올ㄹㅏ인디영화다 요즘소문나서좀많이알든데 ost도판매순위1위하면서 많이팔렸다]
[음악감독 누구니?]
[그냥 너무보고싶을뿐. 꼭따져볼필요는없지]


여기에서 문득 내 머릿속 잠자고 있던 뇌세포 한 마리가 ‘어렴풋이’ 원스를 기억해 냈다. 뉴런의 승리인가?
그건 분명 내가 한창 위병소에 갇혀서 휴가 복귀자들의 잡지를 얻어보던 시절의 이야기, 즉 적어도 2달 전의 “무비위크”지에 실린 내용이었다. 기타를 맨 남자와 그 옆의 여자, 뒤로 보이는 빈티지 거리. 이 정도의 느낌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거리 연주자 이야기인가?’ 정도의 감정을 느꼈었던 것 같다.


[야 그거 왜 이제 개봉하는데?]
[개봉했었는데대구에는상영하는곳이없었을뿐. 이번에딱일주일개봉하드라 담주수요일까지]
[혹시 니가 사랑하는 거기가?]
[어 아트홀에서. 화요일에보러가자 오에스티 좋다좋아. 허허]
[결정]
[잘생각했다. 접수]


[홀릭아으~영화보러 가자]
[시체처럼잤다ㅎ무슨영화??]
[원스 브로도 온댄다]
[아하 오키]


어랍쇼 이놈봐라, 왜 이렇게 쉽게 수긍하는 거지? 뭐라도 좀 물어봐야 될 것 아냐, 이 놈 요즘 영화에 대한 열정이 식었나?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이런 문자가 날아왔다.


[영화제목이 once brodo on denda인주아라따 잠덜깼나보다ㅎ]


그래... 생전 처음 듣는 제목이라 의문이 없었던 거냐? 그런 거냐? 에라 몰라.







그렇게 시간은 흘러흘러 화요일이 찾아왔다. 일단 시내에서 홀릭이와 조우했는데, 약간의 배고픔을 석봉 토스트와 함께했다. 그러던 와중에 브로가 대구역을 통해 대구에 나타났고, 지구는 멸망했다.
젠장, 20세기 소년이 끝나고 후속작으로 21세기 소년이 나온다는 소식에 약간 흔들렸다.

그래 아무렴. 아무튼 브로를 픽업하러 갔는데, 녀석과 똑같은 형태의 생명체를 교보문고 1층에서 발견했다. 우리가 그 미지의 생명체를 브로라 판단하고 접근하고 있을 때, 사실 브로는 교보문고 밖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생명체에 약 10미터정도 가까이 갔을 무렵에야 그것이 모자를 쓰고 한 바가지를 달고 있는 또 다른 생명체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브로를 픽업했다. 이 때 속으로 ‘음... 브로의 바가지가 더 크군’ 정도의 생각을 했는데, 내색하지는 않았다. 대신 브로에게 미지의 생명체에 대해 설명했다. 브로도 속으로 뜨끔했을 거다. 오리지널이라 생각했던 자신의 스타일을 거의 유사하게 재현한 생명체를 발견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우린 그길로 호떡 가게앞을 지나며 호떡 하나씩을 먹으며 동성 아트홀로 향했다. 일단 내가 인터파크에서 대규모 할인을 받으며 예매를 하긴 했는데, 내 전화기로 날아온 문자가 예매 번호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이른 시간에 아트홀로 직행했다. 이 때 중요했던 것은 호떡의 표면이 왜 짜냐는 것이었는데, 참으로 어려웠던 이 사건은 호떡 전문가인 본좌 덕분에 해결되었다. 정답은 버터입니다. 뿌앙뿌앙





간만에 찾는 아트홀이다. 처음 온 이곳의 느낌... 은 예전글에 있을 것이고, 이 극장 근처의 후끈한 소극장들에 대해서도 아마 이전글에 쓴 기억이 나는 것으로 보아 다시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뜨리 몬스터와 이공을 볼 때 당시와는 전혀 달라진 분위기. 물론 배씨 성을 가진 주인장 어르신은 그대로였고, 멀티테스킹으로 매점까지 운영하는 점도 그대로였다. 다만 달라진 것은 그 덜커덕 덜커덕 하던 프린터와 새로생긴 정보 검색용 컴퓨터 2대. 우와아아앙. 좋구나~

이 때, 내 스페셜 컬렉션이 미국에서 날아왔다는 소식이 내 전화기를 강타한다. 우웃, 이건 좋은 일인데 문제는 집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집 뿐만이 아니라, 건물 전체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안타까운 사실... 어떻게든 컬렉션을 오늘 내로 받고 싶은 마음에 대문 안으로 대충 던져 놓으랬는데... 왠지 불안한 이 느낌은 뭘까. 아...

하여간 난 홀릭이의 “Sudo 건강” DVD를 찾아주는 알찬 시간을 갖고, 브롱은 또 다시 그의 고상한 정신세계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우리에게 생일을 물어보며 별자리를 찾던 브롱은, 내게 “그럼 넌 물고기자리네~” 라며 운세를 설명해 주려 했다. 내가 많은 잡지를 봐 왔지만, 언제나 내 별자리는 염소자리 아니면 사수자리 둘 중 하나였다. 대체 이건 어떻게 나온 것인가 싶어 책을 봤더니, 분명 2월 ##일 ~ 3월 ##일 이라고 적혀 있는 거다.

“야, 내 생일은 12월인데 물고기자리는 2월이잖아”
“아이다, 이거 맞다. 이거 오타난거다. 여기여기 1을 써줘야 된다.”

설마 하며 염소자리에는, 분명 12월 ##일 ~ 1월 ##일 이라는 선명한 글씨가 박혀 있었다.
그러니까 이 놈은 이렇게 본 거다.

┏━━━━┓┏━━━━┓
┃천칭자리┃┃염소자리┃
┗━━━━┛┗━━━━┛
┏━━━━┓┏━━━━┓
┃전갈자리┃┃물병자리┃
┗━━━━┛┗━━━━┛
┏━━━━┓┏━━━━┓
┃사수자리┃┃생선자리┃
┗━━━━┛┗━━━━┛

위에서 별자리는 ↓↓ 방향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녀석은 →↓→↓→ 방향으로 봤던 거다. 그러니 11월 ##일 ~ 12월 ##일인 사수자리 다음의 별자리는 물고기 자리. 에효...

이 현장에 있던 홀릭이는 대 폭소를 터뜨렸고, 한동안 뒹굴뒹굴했다. 이 놈은 그 와중에도 이걸 은폐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난 당당하게 녀석에게 블로그에 쓰겠다는 선전포고를 했다. 후훗.


중요한 건 말이다, 동성 아트홀이 이렇게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걸 처음 본다는 거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 왔다. 원스가 이정도란 말인가? 약간의 의혹과 기대, 스페셜 컬렉션에 대한 78%정도의 불안감으로 머릿속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카페라떼 클래식 마일드를 먹어 줬다. 지난번에는 프렌치 카페를 먹어서 실패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구.



그런데 말이다... 막상 의자에 앉으니 뭔가 석연치 않은걸? 위치가 내가 예매한 위치랑 다르잖냐... 내가 증거를 대 볼까? 지금 우리가 앉은 이 좌측으로 70%정도 치우친 위치가 예매할때는 말이다... 조낸 센터였다고, 인터파크 쌞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 이거 보란 말이다. 니 눈엔 이게 71.3% 정도 좌측으로 치우친 포지션으로 보이냐? 그래 좋아. 제일 왼쪽 좌석은 약간 치우쳤다 이거야, 하지만 중간이나 우측 좌석은 완전 센타잖나, 이거 말이 틀리잖아 야 듣고있냐? 마! 인터파크!


에라. 어쩔 수 없지. 그 와중에도 우린 센터를 확보하려 옆에 있는 빈 좌석으로 선발대 브로를 보냈지만, 녀석은 지갑이나 흘리고 괜시리 밑에 있던 음료수 껍데기를 주워서 버리는 안타까운 행동을 하고 만다. 게다가 지갑을 되찾을 때의 그 어색한 동작으로 인해 우린 또 다시 낄낄 거려야 했다.

“저기, 지갑 잃어버리신 분”
[브로 니 꺼 아이가?] - 순간 지갑을 들고있던 양반의 시선이 우리쪽을 향했다. 그리고 허둥지둥 지갑을 찾으려 어색한 미소를 가득 머금고 삐죽삐죽 손을 드는, 모자를 쓰고 뒤에 한 바가지를 달고 있는 미지의 생명체.


그리고 영화는 시작했다.



처음 집중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내 우려는 어느샌가 사라져 버렸고, 세명 모두 120%의 집중력으로 영화를 봤다. 오죽했으면... ‘벌써 끝나?’ 정도의 생각이 들었으니...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정말 초개처럼 지나가 버렸다.



당초 거리의 삶을 이리저리 찍을 것이라 생각했던 내 기대와는 전혀 다른 영화의 모습. 정말 실제같은 주인공들의 모습.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듯이 담아낸 영상과,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극 중 노래들. 정말 단 한 프레임 조차도 영화에 필요하지 않은 프레임이 없다는 느낌, 단 한 장면도 놓칠 수 없는 느낌이었다. 화려하게 치장했다기 보다는 여기 저기를 깎고 다듬은 느낌. 그런 영화였다. 아주 예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홍반장을 볼 때 였던 것 같은데, 그 때 당시 그 영화의 가장 심도깊은 장면은 바다에 앉아서 달빛을 느끼는 장면이었다. 당시에 ‘아,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정도의 감정을 전달할 수는 없을까? 이런 영화 없나?’ 정도의 생각을 했었는데, 운좋게도 그런 영화를 일찍 만나게 되었다.

음악과 함께하는 영화란, 그저 과장되고 생뚱맞은 모습들이었다. 억지로 무대와 결부시키거나, 갑자기 무대가 만들어 지거나, 시도때도 없이 쇼를 하거나.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음악은, 묘하다. 음악이 없다면 이 영화 자체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음악을 억지로 끼워맞춘 것인가 하면 그게 그렇지가 않다. 그 점이 정말 이 영화가 가진 가장 놀라운 점이다. 영화 속에서의 그녀가 자신이 작사한 노래를 CDP로 들으면서 걷는 장면을 떠올려 봐라. 네가 한번이라도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걸어갔던 적이 있다면 그 장면이 자신의 모습과 겹쳐질 거다. 아일랜드고 나발이고 어차피 다 같은 인간 아니냐. 바로 이런 위화감이 없는, 바로 뼈로 와닿는 느낌.

홀릭이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남자 여자 이름도 안나왔다. 끝나고 올라갈 때 Guy, Girl 로 뜨더라. 그거 보니까 어, 그러네? 싶드라.]
이 영화에서는 “아, 전 이번 영화에서 사랑을 그리고 삶을 노래하는 아무개 역할을 맡은 영화배우 김모야입니다.” 가 없다는 말이다. 그냥 그는 자신의 꿈을 지긋한 나이(외모상)가 되어 비로소 이루려 하는 실연당한 남자일 뿐이고, 그녀는 꿈을 포기하고 생계를 꾸려가는 아이의 엄마일 뿐이다. 그 둘이 우연히 만나 서로의 작은 꿈을 이루게 되는 이야기. 게다가 결말도 없는 이야기가 바로 원스이다.

정말 이 영화가 끝내줬던 것은, 끝까지 연결되지 않았던 한 가지. 바로 제목과 영화와의 관계이다. 왜 제목이 Once 일까?

영화가 끝난 뒤, 박수를 치고싶은 홀릭이와 누군가 박수를 쳐 줬으면 하는 나와 4차원에 빠진 브롱은 지하철에서도 계속 원스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다. 브롱의 MP3 플레이어에는 원스의 OST가 몇 개 있었는데, 그걸 들으며 '이거 언제 나왔던 거다' 라며 쑥덕거렸다. 그리고 현대의 영화에 찌든 홀릭이와 나와의 대화는 뭔가 남는게 있었다. 난 그 둘이 아버지의 트라이엄프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다 죽을 것 같아 불안불안 했는데, 홀릭이 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이게 요즘 영화와 드라마의 현실이 아닐까.


집에 와서는 내 스페셜 컬렉션 덕분에 두 배로 기뻐하며 방황하고 있었는데, 홀릭이로부터 문자가 왔다.

[여자가한체코말이너를사랑한다였단거알고계셨나요ㅎㅎ]





그래... 그래서 원스였던 거냐.

[ㅎㅎ 나중에알고나니깐더좋노이거ㅎㅎㅎ]













많은 젊은이들이, 아니 소년들이 학창시절 기타에 대한 환상을 갖는다. 하지만 그것들 중 끝까지 그들을 따라가는 건 정말 1%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 환상이 있다. 그리고 30대에는 그 환상을 현실로 바꾸고 싶다. 내게는 그것이 기타지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는 기타가 아닌 그 무엇일 거다. 그래 우린 모두 그것을 위해 살아가고 있지 않냐?






뱀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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