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언젠가 블로그에 썼던 것 처럼, 내 헤드폰은 3개가 되었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악을 듣는걸 매우 즐긴다. 음악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도 학창시절 등하교 길, 직장생활 출퇴근 길 그 언제의 한 번은 귀에 이어폰을 꽂아 본 적이 있을 거다.
그리고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음악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사용하는 기기들에 대해서도. 일단 구입하기까지의 과정은 나중의 일이고, 구입한 이후부터는 철저하게 그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만들어간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그 유명한 "황금귀를 가진 자" 들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내가 가진 세 개의 헤드폰은 모두 20만원 이상이고 대략적으로 플랫한 성향을 갖고 있다.
대개의 음악듣는 이들이 약속하기로 '플랫한 성향' 이란 어느 한 영역이 도드라지지 않고 평이한 음색, 솔직한 음색을 들려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대개의 구매자들이 이런 것들을 사전에 인지하고 기기를 구입한 뒤, '아... 욘나 플랫하구나' 라며 그 명성에 별점을 더한다.
나는 그들에게 별로 휘둘리지 않는다. 난 존나 실험적인 인간이거든.
난 플랫이고 그런거 잘 모르겠고, 그냥 내가 저 세개로 들어본 바로는 깨지는 음악이 없더라는 것. 뭐 하나 퍼지는 음악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오픈형인 DT880 이놈이 장난이 아니다. 사실 저 세 녀석은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K271 MKII 와 HD7509는 밀폐형, DT880은 오픈형이다.
앞의 밀폐형 두 녀석은, 오픈형인 DT880의 공간감을 도저히 따라가질 못한다. 이런 차이를 나오게 하는 이유가 전문적으로 이리저리 있겠지만 난 그런거 모르고 그냥 현실이 그렇다. 드럼의 다이나믹 같은거, 같은 기타 애드립인데 홀의 크기 자체가 다른 느낌이 있다.
부활의 Never Ending Story 를 들어보면, 처음부터 눈을 밟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승철의 목소리가 나오는 부분에서, 보컬이 나오는 부분에서 노이즈가 들어간다. 이 노이즈가 HD7509에서는 눈에 띄게 도드라지고, K271 에서는 그럭저럭 들리긴 하고 DT880에서는 거의 안들린다. 내가 엔지니어라고 가정했을 때, 믹싱을 했다면 아마 노이즈가 들리지 않아야 함이 '정상적인 상태'일 것이다. 플랫하고 있을 건 없고 없을 건 없다는 세개의 모니터링 헤드폰의 소리가 전부 쳐다른건 재미있는 사실이다. 내 귀는 두개가 전부고, 그 놈들로 저 세 놈을 판단한 것이기에 변수는 없다. 저 세놈은 분명 서로 다르다.
결과적으로, 나에게 돈을 주고 한개의 헤드폰을 사라고 하면 '오픈형'의 끝판 대장 헤드폰을 구입하겠다. 그러면 된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믿음을 지켜나가면 된다.
지난 '나는 가수다' 경연에서 박정현이 부활의 소나기를 불렀다.
소나기라는 이 곡은 뭐랄까... 부활 보컬이라면 꼭 한 번 거쳐가야 하는 곡이라고 해야하나...
같은 곡인데 각자의 보컬 성향을 한 큐에 들어볼 수 있는 곡이 바로 소나기다. 이 곡이 처음 수록된 앨범은 1993년 발매된 부활의 3집, '기억상실' 이다.
김태원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정서를 곡으로 담고 있고, 그가 보컬에게 요구하는 것 역시 한결같다.
부활의 보컬들을 관통하는 코드는 '서정'이고, 김태원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부활의 보컬 정동하가 처음으로 참여한 앨범의 타이틀이 '서정' 이다.
김태원은 항상 추억을 어떤 식으로 노래하고 표현할 것이냐에 대해, 이번에는 어떤 회상을 할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주제가 잡힌 가사는 작은 사실을 기초로 하여 이야기를 구체화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를테면 소나기의 경우, 단편 소설에서 쓰인 '소나기'라는 장치를 본인의 감성으로 풀이한 뒤 표현했다. 소설의 제목이자 복선에 불과한 '소나기'라는 소재에서, 소나기가 갖는 시각적, 시간적인 특성을 추억과 결부시켜 아름다운 가사로 완성했다.
'온통 푸른빛으로 그려지다, 급히도 회색빛으로 지워지었지'
'작은 시간에 세상을 많이도 적셨나'
김태원이 만드는 곡은 그 구성이 거의 같다. 그의 노래에서 오는 감흥은 '극적 구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사와 멜로디의 결합성, 보컬의 감성에서 온다. 앞서 말한 전반적인 보컬을 아우르는 특징, 박완규와 이승철을 제외한 모든 보컬은 이것을 갖고 있다. 각자의 색깔로...
정동하는 부활의 역대 보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고있다. 하지만 '서정'에서 보여주는 그의 색깔은, 다른 보컬들을 압도하는 말 그대로의 '서정성'을 갖고 있다. 그 이후의 앨범들에서는 이러한 특징들이 고정화되고, 매너리즘에 가까운 성향을 보이며 '부활의 노래는 거의 비슷하다' 라는 느낌에 일조하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 그를 판단하기에는 서정에 담겨진 김태원이 발견한 그의 재능들이 너무 아깝다.
정동하 본인의 말에 따르면 정동하의 본래 보컬 스타일은 소몰이 창법이다. 바꿔 말하면 김태원은 정동하가 '노래를 잘 불러서' 그와 계약한 것이 아니다.
위대한 탄생의 초반편에서, 김태원이 백청강에게 하는 주문은 난해하다. 다른 멘토들이 기술적인 부분을 지적할 때, 그는 '이런 느낌으로 불러라' 라는 어떤 추상적인 정서만을 요구할 뿐이다. 방법이 무엇이건, 그가 원하는 것은 곡의 표현이지 보컬의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의 시각으로 판단하건데 아마도 정답인 것 같다.
김태원은 정동하에게서 그가 찾던 뭔가를 발견했고, 그와 계약해서 발매한 첫 번째 앨범속에 그것을 모두 보여줬다.
김태원과 '이상시선' 앨범을 작업한 김기연의 보컬을 들어보면, 그가 대중에게 먹힐만한 보컬을 찾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지미 페이지 역시 그냥 들었을 때 단숨에 반하는 음색은 아니다. 문제는 김기연의 그것이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라는 거다. 그런데 자꾸 듣다보면 뭔가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느낌이 온다. 노래도 이상하고 창법도 이상하고 음색도 '튀는'데, 정서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있다. 부활의 노래라는 선입관이 없이 듣더라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서투른 것 같은데, 뭔가 깨는 것 같은데 계속해서 듣게된다.
정동하의 보컬을 듣다 보면, 라이브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가끔씩 툭 하고 던지는 부분이 있다. 아예 완전히 던져버리는 거다. 문제는 감정선도 함께 던져진다. 마술사의 현란한 움직임에 빠져있던 관객이 트릭을 발견할 수 있을만큼의 틈이다. 그런데, 이를 덮고도 남는 정동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어떤 느낌이 있다. 이것이 음색에서 오는 것인지, 창법인지 뭐 이런 기술적인 탐구는 불필요하다. 그냥 그걸로 된거다. 그는 가치있는 보컬이다. 이 느낌은 그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지난 '나는 가수다' 경연에서 박정현이 부른 소나기는, 청중 평가단에게 선호도 7위의 노래였다.
물론 일주일간 몰아쳐서 편곡한 곡을 '즉석에서 평가한' 것의 가치가 어느정도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이것은 출연자 모두가 동일한 조건이기에 상대평가의 가치는 분명 인정되는 요소다.
박정현은 뭐랄까... 김형석은 그를 '꾀꼬리같이 노래한다' 라고 표현했는데, 확실히 음색은 대중적으로 꾀꼬리같긴 하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꾀꼬리가 노래한다' 라는 표현을 쓴다. 까마귀한테는 '운다' 라고 하면서... 박정현의 보컬은 바로 이런 느낌이다.
그녀는 대부분의 곡을 일정수준 이상으로 소화할 수 있지만, 슬픈 곡을 백지영만큼 소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한, 그녀의 노래에는 발랄함과 생기가 있지만, 김재기와 정동하의 보컬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내가 본 박정현은 '말하듯이' 노래하는 가수이고, 그녀는 말을 조곤조곤 하는 것이 아니라 '상냥하고 리드미컬하게' 한다. 그녀의 기교가 화려하면서도 화려하지 않게 보이는 이유는, 기교에 정형성과 꾸준함이 없기 때문이다.
김연우의 보컬은 안정적인 수준과 음압으로 계산된 기교를 표현한다. 청자가 들으면서 예상이 되는, 기교임을 알아챌 수 있는 범위 안이다. 그러나 박정현의 기교는 그 발음 만큼이나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기교로 인식되기 앞서 '소리'로, '음정과 박자에 맞으면서 음색이 몹시 아름다운' 어떤 소리의 일종으로 받아들여지고 그것의 연속이 맞물려 시너지를 낸다. 박정현의 기교가 감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의 노래에 몰입할 수 있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 가령 음색이 아름답다거나, 연주가 아름답다거나 멜로디가 아름답다 같은 어떤 '대중적'으로 먹히는 코드 말이다. 이것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그녀의 노래는 그저 쓸데없이 기교로 가득한 불필요한 치장물이 될 뿐이다.
지금은 종영된 프로그램인 '음악여행 라라라'에 이영현과 아이유가 듀엣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아이유'가 이영현에게 압살당한 정도로 네티즌들은 기억할텐데... 사실 기본적으로 성량에서, 나아가 보컬 성향에서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공정한 비교가 될리가 없다. 아이유는 소리를 삼키면서 안정감과 컨트롤을 얻는다. 그녀의 노래에는 윤하처럼 '쏴아' 하고 몰아치는 후렴구가 없다. 반면 윤하는 시원하긴 한데 컨트롤이 안된다. 그리고 그 시원함에 다이내믹은 소량 있으나 힘이 없다. 비성을 섞더라도 이선희만큼의 힘이 들어가면 슬픈 노래가 가능할텐데.
이영현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 그녀가 온몸으로 부딪혀온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내뿜고, 설령 컨트롤을 잃더라도 그것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가수다. 아이유와 이영현의 듀엣을 보면, 서로의 완전히 반대된 성향이 극명하게 드러나며 이와 동시에 대부분의 청자는 '뿜어내는' 쪽에 보다 더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교감인거다.
BMK의 무대를 보는 김연우의 놀란 표정에서, BMK가 김연우가 생각하는 뭔가를 초월했다는 걸 유추할 수 있다. 임재범의 말을 빌리자면 김연우는 '더 할 수 있는데 절제하는' 스타일이다. 반면 BMK의 경우는 시작을 90으로 하고, 절정에서 200을 내뿜는다. 문제는 여기에서 온다. 그녀의 무대는 곡이 커버해 주지 않으면 리미터를 넘은 영역에 걸려있다. 단순히 성량이 큰 문제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면 '기술적인 부분'을 너무 강하게 느끼는 점이 문제다. 파형이 큰 바이브레이션과 연습된 발성이 만들어내는 결과다. 박정현과는 정 반대의 성향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순간도 노래를 놓지 않는다. 잔잔하고 느린 부분에서, 발성을 만드는 부분은 청자에게 탄로난다. 절정을 내지를 때, 그 절정의 연속에 감동이 있어야 하는데, 바이브레이션이 있다.
이나영이 한참 뜰 당시 기자들은 이런 기사를 썼다. 연기가 너무 단조롭다고, 연기변신이 필요하다고, 모든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녀는 같은 인물이라고.
그래서 연기 변신을 하면 이런 기사를 쓴다. 성급한 연기 변신이라고, 연기가 너무 어색하다고, 보다 더 몰입 할 필요가 있다고.
결국 사회가 원하는 건 모든 걸 할 수 있는 만능 재주꾼인데, 실제로 그것이 되어야 할 필요도 없거니와 돼봐야 개코나 쓸데가 없다.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이지만, 다방면에서 지랄을 하면 하나만 꾸준히 한 놈을 이기기가 존나 힘들다. 결국 뭐냐, 그들은 자신이 잘 하는걸 하면 되고,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걸 찾아서 보면 되는 거다. 바꿔 말하면 음악은 다양해야 한다. 하지만 아티스트 한 놈이 랩도 하고 락도 하고 트로트도 하고 쓰리고 포고 파이브고 할 필요는 없다는거다. 니가 돈까스를 좋아해서 돈까스만 쳐먹다가, 넌 왜 돈까스냐고 나 이제 질렸으니까 참치회로 빨리 바꾸라고 해봐야 소용이 없는거다. 니가 참치 회를 쳐 사먹으러 가는 것이 정상적인 거다.
김범수는 만인이 인정하는 미남에, 절대 가창력의 소유자다. 하지만 Never Ending Story 에는 영 소질이 없어 보인다.
이에 대해서 이승철이 김범수보다 노래를 잘 부른다고 말 할 수는 없다. 각자가 서로의 방법으로 같은 곡을 표현했고, 그 표현이 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것이 이승철이었을 뿐이다. 마치 박정현이 그랬듯이.
김범수는 뭐랄까, 융통성이 추가된 BMK 정도라고. 표현방법은 다양하지만, 노래를 부를때의 습관은 동일하다. 그리고 피니쉬 역시. 소절 끝 처리는 항상 꺾이며 끝나고, 놔서 부를 수 있는데 놓지를 않는다. 결국 못 놓는것과 다름이 없게 된다. 노래의 언젠가에 소리가 쭉 뻗는 높이와 타이밍이 있는데, 이것이 곡의 어느 시점에 올까를 생각하게 된다.
대형 발라드 가수라는 것이 있다. 말이 희한하긴 한데, 이런게 있긴 있다. 역사도 없고 그렇다고 딱 꼬집어 누가 이거다 라고 할 수는 없는데,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대형 발라드 가수들은 소위 말하는 R&B 라는 것과 다른 위치에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R&B가 갖는 이미지에 기인한다.
이승철과 이은미, 이 정도가 되면 대형 발라드 가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김연우를 일컬어 '단련된 정권' 같은 느낌, 정석적인 보컬의 표본 정도로 말하는데... 사실 그는 R&B 스러운 색이 짙다. 분명한 건 끝 처리를 '꺾임'으로 마무리하는 보컬들은 R&B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 물론 한국 특유의 R&B를 말하는 거다.
대형 발라드 가수들의 가장 공통적인 특징은, 감탄을 주는 후렴이 아닌 감동을 주는 후렴을 부른다는 거다. 그들은 음정의 빠른 변화, 하이 노트같은 인상적인 장치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코러스를 표현한다. 단순히 성량의 변화가 아닌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존재한다. 그들은 청자가 기교라고 알아챌 수 없는 방법으로 정서를 전달한다. 우리는 특정 표현에 대해 '아, 저것은 기교다' 같은 스테레오 타입을 인지하고 있다. 김범수와 김연우가 가진 보컬 특성, BMK의 발성과 바이브레이션 등은 이것을 포괄적으로 표현한다. 이를 흐리게 하기 위해 다양한 표현과 기술을 동원하지만, 결국 보컬이 줄 수 있는 감동이라는 것은 '담백함'에서 벗어날수록 힘이 반감된다.
머라이어 캐리가 1위한 곡은 앨범으로도 나올 만큼 차고 넘치고, 엘튼존의 히트곡과 명성 역시 대단한 수준이지만, 대중이 그들의 곡으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피아노 한대로 대충 쳐갈긴 Hero 와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이다.
흔히 말하는 아이돌 가수들은 철저한 시스템속에서 교육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때문에 그들은 대충 아무 노래나 던져줘도 '그럴싸한 정도' 까지는 그 곡을 불러낼 수 있는 재주가 있다. 이것이 '예상외로 실력파 아이돌'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다. 그리고 아이돌이 실력을 갖고 있다함은, 춤을 잘 춘다는 말이 아니라 노래를 곧잘 한다는 말이 된다.
애초부터 춤과 노래는 서로 다른 가치로 인식이 된다. 이 더러운 기준 속에서 아이돌은 실력파와 비쥬얼파로 나뉘고, 설령 실력파라도 결국 나이가 들었다, 그룹이 깨져서 솔로로 나왔는데 그게 춤은 없고 슬로우로 승부한다 같은 여러가지 조건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언제까지나 아이돌일 수 밖에 없다. 슬프게도 그들이 아이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들을 아이돌로 인지했던 자들이 먹고살기 바빠서 인터넷을 하지 못하는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니들이 그렇게 빠는 이승철도 따지고보면 아이돌이다 십새들아.
김형석은 옥주현을 일컬어 '정답인 발성을 구사하는 가수'라고 표현했는데, '천일동안'의 후렴구를 부르는 옥주현의 발성은 영 정답이 아니다. 이것이 정답인 발성으로 뮤지컬을 하던 옥주현의 승부수다. 그녀는 자신의 말 그대로 드라마를 쓰길 원했고, 대중들이 원하는 드라마는 기술적인 감탄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거다. 그녀의 후렴은 계산된 것이었지만, 500인의 청중평가단은 그녀의 무대를 인상깊게 기억했다.
놈들이 착각하는 건, 옥주현이 1위를 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놈들이 안되는거다. 옥주현은 청중 평가단이 뽑은 3명 가운데 가장 많이 끼어있었을 뿐, 1등이 아니라는 거다. 투표용지에 있는 7개의 칸 중 3개의 칸에 동그라미를 그리면 된다. 애시당초 1, 2, 3위를 뽑는 것이 아니라 인상 깊은 사람 3명을 무작위로 뽑는 시스템이란 말이다. 200명의 마음속에 1등인 놈은 201명의 마음속에 3등인 놈을 이길 수 없다. 이런 시스템인거다. 1등이건 3등이건 일단 투표가 되면 그 가치는 동일해진다.
BMK의 무대가 7위를 한 것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해서 무대를 망쳤기 때문이 아니라 선곡을 잘못해서 그렇다.
그녀가 만족할만한 무대를 했다 하더라도, 그녀의 무대에 대한 평가는 큰 변동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본 그녀의 '물들어' 를 부르던 무대는, 정말 곡의 마지막에는 흠뻑 젖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훌륭했지만 그건 곡이 그녀와 잘 맞았던 거다. 심지어 내가 본 KBS의 한 야외무대에서, 그녀는 발 셋팅조차 관광보내버리는 실력을 과시했다. 마이크의 셋팅은 어느정도 흡수와 반사를 균형적으로 해야 하는데, 그 날의 마이크는 완전히 진공청소기마냥 보컬을 흡수하는 마이크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 마이크가 빨아들이는 한계점을 넘어서는 성량으로, 무대를 박살냈다. 난 마치 드래곤볼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편지는 안된다. 그대 내게 다시도 안된다. 둘 다 노래를 놔야 하니까. 그녀는 노래를 끌어안고 우주로 간다.
혹자는 김태우를 일컬어 '염소 바이브' 라며 까댄다.
안타깝게도 김태우는 바이브레이션의 진동폭을 조절할 수 있는 보컬이다. 그의 문제는 피치에 있지 바이브레이션에 있지 않다.
염소로 깔려면 김동률이나 김형중을 까라. 얘네는 조절이 안된다. 김동률은 심지어 바이브레이션의 피치도 안맞다. 김형중은 이것 말고도 무수히 까일 여지가 존재한다.
왜 이 말을 꺼냈냐하면, 이 능력이 '대형 발라드 가수' 같은 걸 만들 때 가장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원하는 부분에 원하는 형태로 기교를 넣을 수 있는가, 그 기교가 튀지 않고 안정적으로 곡의 진행을 돕는가? 뭐 이런거다.
가령 민경훈을 보자. 늘어진다. 내가 민경훈과 BMK의 그것이 유사하다고 하면 아마 존나 까일 것 같다. 그런데 유사하다. 다른 점은 민경훈은 모든 마디마디에 이걸 쓴다는 점 정도.
박명수와 이승철의 보컬도 거의 같다. 이것도 아마 존나 까일 것 같다. 그런데 유사하다. 사실 박명수가 노래하려고 시동을 걸 때 나오는 그 어떤 소리를 내는 방법같은 것은 이승철의 초기 스타일과 거의 같다. 둘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코를 여느냐 열지 않느냐, 유지가 되느냐 안되느냐, 이것 밖에 없느냐 더 있느냐 이 정도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박명수는 이승철이 낼 수 있는 수 많은 발성방법 중 대표적인 한 가지를 거의 유사하게 할 수 있으나, 어설프고 그것밖에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윤도현은 락보컬의 완성형에 가깝다. 물론 낼 수 없는 사운드가 있지만, 특정 영역을 모두 정복했다고 해도 무방한 것 같다. 가능한 스테레오 타입은 모두 할 수 있고, 트윈기타를 바를 수 있는 압도적인 힘과 끈적한 음색이 있으며 무엇보다 '특징적인 음색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5년만 지나도 음색과 음역이 변하는 락커들을 너무 많이 알고 있다.
그는 '나는 가수다' 에서 이질적인 존재다. 이를테면 감동이란건 두 가지가 있는데, 윤도현이 주는 감동은 다른 출연자들과는 다른 형태의 것이다. 김연우를 일컬어 '단련된 정권' 정도로 말하지만, 사실 제대로된 정권은 윤도현에 가깝다. 그는 락커가 할 수 있는 모든 당연한 보컬 기교를 '자연스럽게' 노래에 사용한다. 이것은 도드라지지 않지만 완벽하게 노래를 '수식'한다.
김연우는 별 무리없이 하이노트를 구사한다. 중요한 건 '무리없이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곡의 감상에 도움이 되는 것이냐 라는 문제다.
이승철이 부른 네버 엔딩 스토리의 후렴구는 정말 놀랍다. 이걸 듣고 있으면 어떤 감흥이 느껴진다. 그리고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을 느꼈기 때문에 이 곡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본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아마 무릎팍 도사였을거다. 이승철은 '네버 엔딩 스토리'의 가사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가사를 나열하며, 이건 말이 안된다고 웃어넘겼다. 사실 가사가 이상한 것은 사실이다. 사실 사실이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힘겨워 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속에 머문 그대이기에
윤도현은 '런 데빌 런'의 가사에 도저히 공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꽤나 그럴싸하게 불렀다. 이것이 그가 가진 보컬과 YB의 저력, 밴드의 저력이다.
박정현은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같은 곡, '소나기'나 '그대 내 품에' 같은 곡을 어떤 식으로 해석했을까?
이승철은 이해가 안된다는 가사의 노래를 불렀는데 어떻게 그런 느낌이 나올 수 있는 걸까?
이건 가사를 이해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가사 내용처럼 춤을 만드는 것과 똑같은거다. 가사를 이해할 수 없어도 곡에 색깔을 입힐 수 있다.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떤 부분을 어떻게 처리할까가 아니라, '얼마나 전달되는가?' 라는 점이다.
존나 하이클래스의 음악인들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미학적 고찰로 만들어낸 음악은 다만 그들만이 소통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된 가치일 뿐이다.
일단은 서로 공감할 수 있어야 내가 아닌 남이 들어도 그게 뭐가 대단하구나 라는 걸 느낄 수가 있고, 기교에 감탄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게 얼마나 어려운 기교라는 걸 알고 있어야만이 감탄인지 뭔지를 할 수 있는거다.
아이유는 존나 아이돌이고 절대로 실력있고 가창력 있는 가수 대열이 들어갈 수 없지만, 희한하게도 존나 아티스트라는 놈들은 전부 아이유와 작업을 한 번씩 한다.
그래서 이승철이 그런 말을 하는거다. 프로를 아마츄어가 '즉흥적'으로 평가하지 말라고.
바야흐로 연예인이 되려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자가 되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이승철이 '나는 가수다'에 출연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했다.
과연 이 놈들이 이승철에 대해 뭐라고 말할지 궁금해진다.
'희야'를 부를 때의 그 '절규하는' 보컬은 이미 없다. 지금의 희야는 그저 그때의 희야와 코드, 멜로디만 같은곡일 뿐이다.
지금의 이승철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무대에 대한 '즉흥적'인 평가는 굉장히 불합리하다. 하지만 그의 보컬은 '즉흥적'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는 S급으로 랭크되어 있고, 500명의 청중 평가단의 형편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므로.
내가 궁금한 건 하나다.
과연 이승철이 '나는 성대가 아니다' 라는 새로운 흐름을 불러올 수 있을까?
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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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쓴 글이, 내가 모르는 곳에,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인용되고 싸질러지는 것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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