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노래에는
다시, 김태원이 작곡한 노래에는 반복되는 어휘들이 있다. 가령 소녀, 아이, 비, 의자 이런 것들이다.
본래 노래라는 것이 첫방에 "딱!" 하고 마음에 들기가 엄청나게 힘들다. 특히 노래의 처음부분부터 듣기 시작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라디오나 TV의 이름모를 노래들이 인상에 깊이 남는 것 또한 이런 이유에서다. 정이 안가는 부분은 듣고 흘리는데 꽂히는 부분은 '이거다!' 라고 기억하기 때문에 우연을 빌미로 마음에 드는 곡을 찾게 되는 거다.
사람도 그렇지만 가수를 평가할 때 노래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그 인간 자체 역시 판단의 가늠자가 된다. BMK가 '나는 가수다'에서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수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옥주현이 까이는 모양이다. 영 사랑을 못 받는 모양임.
김태원으로 돌아가서, 만약 최초의 부활 노래에 대해 느낀 감흥을 A라고 했을 때, 김태원이 밀고있는 주요 어휘들을 섭렵한 후의 감흥은 B로 A와 같지 않다. 이 둘 사이에는 상당히 큰 갭이 존재한다. 이는 김태원 삶의 곡절에서 비롯된다.
가령 이승철이 '밖으로 나가 버리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라고 불렀던 이 곡은, 리멤버 앨범에 실릴 당시 구태여 김태원 자신이 불렀던 곡이다. 이유는 한 가지,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잠시 가사를 확인해 본다.
애시당초 슬픈 가사다. 설명을 하자면 이 곡에 담긴 내용은 이런 식이다.
김태원이 쓰는 곡은 대부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가사가 씌어진다. 요컨데 자신이 쓴 곡은 곧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
문제는 김태원 본인이 당시 약에 취해 있었다는 사실에 있다. 즉, 무대 뒤의 소녀는 약에 취해 있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관객들 사이에서 차마 보지 못하고 안타까워 하고 있다는 거다. 여기에서 더욱 문제는 김태원 본인이 소녀의 거동을 알고 있다는 것에 있다.
이어지는 기타 솔로는, 여기까지의 정서가 전달되었다는 전제 하에 청자로 하여금 정말 구슬픈 정서를 느끼게 한다. 여기까지의 스토리를 알고 듣는 것과 모르고 듣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일은 여기에서 끝난게 아니다. 자신과 '소녀'의 이야기이기에 이승철에게 주지 않았던 그 노래는, 결국 부활 앨범에서는 부각되지 못하고 이승철의 솔로 앨범을 통해 '회상 III' 가 아닌 '마지막 콘서트' 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이에 대해서 아마 무릎팍으로 기억하는데, 김태원이 직접 한 말이 있다.
당시의 부활에 있어 이승철이 있고 없고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라고. 이보다 더 안타까웠던 것은, 자신이 무일푼이던 시절 이승철이 부른 '마지막 콘서트'의 저작권료가 나와서 근근히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점...
이런 사실들이 얽히고 설켜 '회상 III' 라는 곡은 정말 슬픈 곡이 된다. 물론 사람들은 '마지막 콘서트'로 알고 있고, 심지어 부활 콘서트에서도 마지막 콘서트라고 한다. 김태원은 이미 이런 단계를 초월했다.
김태원에게 '의자'는 기다림의 정서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소녀가 자신의 무대를 조마조마하며 기다리던 '작은 의자', 멀리 떠난 소녀를 그리던 소녀가 머물던 '너와 머물던 작은 의자', 그 모든 비밀을 간직한 '빈 의자'.
그리고 김태원에게 '비'는 '비와 당신의 이야기' 그 자체다.
이 곡은 '소녀'가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너무도 슬픈 김태원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비를 통해 그녀를 추억하고, 그녀와의 장면을 어떤 강한 인상으로 기억한다.
'사랑스럽던 눈가의 비들' 같은 것들, '비에 비', '눈에 비 맞으며' 이런 가사들은 다른 소절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며 당시의 슬픈 정서를 함축적이고 아름답게 전달한다. '햇빛 눈이부신 날에 이별 해봤니 비오는 날 보다 더 심해' 이런 가사를 생각해 보면, 의미는 유사하지만 김태원의 가사에는 본인이 느낀 감흥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눈물을 말한 것은 아니지만, 울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고 그것을 울고 있다고 기억하기 싫다는 것까지 표현이 된다는 거다.
이 곡이 대단한 것은 가사와 곡이 혼연일체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같은 가사를 반복하며, 후렴의 끝에 다다르면 그들의 슬픈 사랑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에 이른다.
이전의 글에도 썼지만, 김태원의 곡이 가진 공감대와 폭발력은 가사와 멜로디의 시너지에서 나온다. 어떤 멜로디가 있다고 할 때, 이 멜로디의 분위기에 어울리고, 리듬감을 해치지 않으며 나아가 '각운' 같은 것 까지 만족시키는 가사를 쓰기가 쉽지가 않은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컬을 정해 두고 곡을 쓰는 것...
내가 오늘 '나는 가수다'를 봤는데, 뭐랄까 BMK의 무대는 이전의 글과 '상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평가야 하는 사람 마음이겠지만, 이전의 방송에서도 오늘 방송에서도 '달라진 창법'을 이야기하는데 대체 무엇이 달라진 창법이고 락 보컬인지 전혀 공감 할 수가 없었다. 락 보컬이라면 '윤도현' 이라는 표준이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보여주고 있잖나. 그는 이 전 글에도 적었듯이 '락 보컬이 보여줄 수 있는 응당 당연한 것들을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는 지극히 완성된' 보컬이다. 그래서 뭔가 새로운 것, 새로운 옥타브, 새로운 창법 이런것으로 보컬 쇼를 하는 것이 아니기에 다른 이들과 이질적이라고 말이다.
예전에 관광나이트 견학을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무대가수 한 명의 노래를 듣고 견학을 주선한 밴드 마스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노래를 저렇게 부르면 안돼, 저걸 질질 끈다고 카는데 저건 안된다."
"왜요?"
"춤이 안돼."
그러니까 술이 꽐라된 인간들이 흥에 겨워 춤을 추게 만들어야 되는데, 그 가수는 바이브레이션을 위해 이분음표를 사분음표로 부르고 있었던 거다.
이유는 좀 다르지만 결국 이런거다. 차를 타건 뭘 타건 관계가 없는데, 도착지는 서울이어야 한다. 단, 도착한 서울에는 '감동' 혹은 '메시지' 같은 것들이 있어야 한다.
BMK의 후렴을 타고 서울에 갔다. 서울에는 갔는데 거기엔 바이브레이션 밖에 없더라.
물론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거다. BMK에게는 뭔가 정제된 사운드가 느껴진다. 특히 마이크의 흡음수준을 넘어서는 그 성량은 무서울 지경이다. 그런데 이건 박완규가 평가가 안된다던 노래와 같은 수준이 아닌가. 그녀는 말 그대로 무대에서 모든걸 쏟아내고 왔다. 이런 무대는 결국 반복될 것이라는 예상을 남길 뿐이다.
박정현이 '소나기'를 실패한 이유는 곡과 보컬이 따로 놀아서다. 이 두 가지만 따로 놀았던 것이 아니라 곡과 보컬과 가사 이 세 가지가 모두 따로 놀았다.
음악적인 다양함을 위시한 '아일리쉬' 인지 뭔지의 편곡은, 다양성이나 신비감 같은 것을 줄 수 있을 지언정 가사와 전혀 어울리지가 않어. 게다가 보컬 성향 역시 단조가 아닌 장조다. 나 역시 2nd moon, 앨리스 인 네버랜드, 바드 이런 사람들 곡은 재미있게 듣는데, 소나기랑은 맞지 않는 옷이다.
지난 회차에 박정현이 이적을 찾아갔는데, 이적이 부른 그 몇 소절이 그렇게 좋았다. 역시 원곡자는 다르구만...
이런 차이인거다. 박정현은 주어진 곡으로 이걸 어떻게 부를까, 어떻게 표현할까 이런 것들을 궁리한다. 편곡을 어떻게 하고 여기에는 바이브레이션을 이렇게 넣고 뭐 이런저런 시도를 하겠지. 반면 현재 유일하게 '창작'이 가능한 참가자인 YB같은 경우는, 보컬을 사운드를 구성하는 '소리 중 하나' 정도로 여기고 사용하고 있다는 거다. 특히 오늘 경연의 리벌브와 마이크 같은 것들은, 그들이 내고자 하는 사운드에 지극히 충실한 셋팅이었다. 어디에서 꺾고 어디에서 지르고 이런 것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무대를 스스로의 의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아티스트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와 능력이다.
인터넷의 한 무리들은 나는 가수다가 '일방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을까 걱정하는 소리가 많았는데, 결국 기우일 뿐이라는 거다. 그들은 이제 '보컬쇼'에서 '무대'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일찍이 무대를 보여준 이소라는 탈락했지만.
김범수의 무대는, 편곡자와 가수가 만들어낼 수 있는 절정의 하모니였다. 모든 것이 계산된 무대는, 받아들일 준비가 된 관객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스케치북의 무대가 주는 분위기는, 출연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관객의 마음가짐이 존재하기에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가령 누구 나오면 지랄 발광을 하고, 누가 나오면 침묵하고 하는 합동 콘서트 같은 지랄쇼가 아니란 거다. 적어도 '나는 가수다' 라는 프로그램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들의 무대에 대한 퀄리티를 확보했다. 이제 어떤 공연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거다.
얼마전에는 '불후의 명곡 2'를 봤는데, 심수봉 정말 대단하더라.
비슷한 분위기로 이승철이나 변진섭 같은 스타일도 있는데... 이와는 또 다르게 차분하고 정제된 지성적인 느낌, 긴 호흡...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더라. 본인이 만든 노래를 본인이 기가막히게 부른다니...
샤이니의 종현은 고평가 받고 있는 보컬이긴 한데, 막상 들어보면 안정감이 하나도 없다. 무대에서도 그렇고 어떤 지긋하게 한 음을 연속해서 낸다고 했을 때, 매우 불안한 사람중의 하나다. 샤이니의 곡 자체가 빠르게 음정이 변하기 때문에 이것이 캐치되지 않았을 뿐, 흐느끼며 부르는 그의 노래는 똑같이 흐느끼며 부르는 시아 준수와는 다르게 감정이 확 와닿지 않는다.
김태원이 처음 미군부대에서 '불'을 발견했을 때, 그 짐승은 목 위의 부분으로 간드러진 고음을 갖고 놀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고음이 다만 목 위의 부분이 아니라 밑에서 쳐 올려서 목 위에서 컨트롤하는 느낌이라 소리는 가늘어도 힘 자체가 다른거다. 호흡이 시밤...
결과적으로 지금은 이게 안되지만, 박완규의 현재 보컬을 들어보면 배에서부터 뭔가 묵직한 것들이 목을 뻥 하고 뚫고 펑펑 나오는 느낌이다. 김태우의 보컬도 이와 유사한 느낌인데 차이점은 김태우는 배가 존나 거대한 울림통이고, 이 울림통의 지름만한 것을 목으로 그대로 뿜어 내는데 그걸 입을 약간 사용해서 컨트롤하는 느낌? 김태우도 모든 노래의 끝 처리를 바이브레이션으로 하긴 하는데, 그는 이걸 위해 박자를 늘리는 짓은 하지 않는다. 아마 마디와 마디를 자연스럽게 잇는 바이브레이션으로는 몇 손가락 안에 들 것 같다. 뭐랄까 김태우의 그것은 어딘가 컨트롤하는 측면이 있고, 가끔 뭉쳤다가 나오기도 하고 뭐 그런데, 박완규의 그것은 그냥 완전 날것이다. 존나 시원하다. 이건 박완규 혼자 놓고 보는게 아니라 옆에 어떤 보컬이든 좋다. 아무나 붙여보면 확 느껴질거다.
존나 가수를 반말로 막 쓰고는 있는데, 어차피 누구누구 씨 이렇게 쓰기에는 내가 지친다. 원래 눈에 보이면 선생님이지만 없으면 걍 담임, 담탱이잖나.
아이유는 괜히 출연했다가 이미지를 완전히 잃고 하차했고, 효린은 자신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했다. 효린은 정말 신기한 보컬인데, 특정 음역대의 주파수라고 해야되나 그게 마이크가 완전히 빨아먹는 그것이다. 이런 식으로 발성을 하는 애들이 종종 있는데, 슈스케이의 박보경도 특정 음역대에선 이렇다. 그런데 효린은 음색이 좀 더해지고 발성특성이 더해져서 존나 이게 강하다. 문제는 그 부분 말고는 전부 버렸다는 거다. 그리고 기술을 넣는 건 본인 마음이겠지만, 어차피 구성을 그렇게 하는 거면 버린 초반 부분에는 바이브레이션 따위 없이 그냥 놔야 되는데 이걸 안고 간다. 그래서 노래가 지루해진다.
예성은 어떻게 하면 저 만큼 삼키고 부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노래를 부르더라. 뭘 어떻게 하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원리 자체는 소몰이와 유사한데, 코를 좀 열어서 막힌걸 좀 명료하게 하는 느낌? 하지만 다이내믹은 전혀 없고 특히 '서시'를 그렇게 부르다니... 모든 곡을 한 가지 스타일로 소화한다. 서시 원곡을 들어보면 답답함을 알거다. 왜 불필요하게 진지한거지? 존나 기를 모아서 쨉만 날리는 느낌이다. 숨을 뱉지를 않어...
요섭은 '아 저 친구 좀 하네?' 싶었던 친구다. 그런데 이 친구는 가끔 음정이 완전히 나가더라. 난 이 친구가 가볍게 박자만 맞춰서 노래를 부르는 그런 스타일이 되게 마음에 들었다. 힘을 들이지 않고 노래 할 수 있고, 메인 보컬 아이돌답게 일정 수준 이상의 교과서는 갖추고 있다. 그런데 그 이상은 본 적이 없다. 좀 더 많은 독립무대와 곡을 봤으면 좋겠다.
이걸 쓴 이유가 옥주현 때문인데... 소위 아이돌이라 불리는 친구들은 정기적으로 무슨 교육같은걸 받는 모양이다. 노래를 들어보면 거의 공통적인 몇가지가 보인다.
여기에 자신의 뭔가를 녹여넣을 수 있느냐 없느냐인데, 교육 이전에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친구들은 이런걸 곧잘한다. 문제는 그들이 노래부르길 좋아하면서 생긴 고정된 특징들이 잔존한다는 거다. 이건 좋고 나쁨을 떠나서 곡을 자기것으로 만들 때 뭔가 변하게 된다는 문제가 생긴다. 곡을 딸 때 뭔가가 변하는 거다. 뭔가가...
나는 가수다에서 옥주현의 무대는... 이전 경연에서도 느낀 거지만 뭐랄까 몇 번을 노래해도 아마 '똑같이' 나올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극도로 연습된 뭔가를 담고 있다. 또한 정형화된 특징 같은것들이 은연중에 나온다. 곡의 기승 부분에 걸린 발음, 전결 부분에 이르러 고음에서 이어지는 음정에 대한 처리, 입으로 컨트롤하는 소리의 느낌, 바이브레이션 같은 것들. 이런 것들은 '뮤지컬'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대중에게 인식되며, 애시당초 까던 이들에게 깔 거리를 제공한다.
뭐 그들이 까고 말고는 별로 문제가 안되는데, 좋은 것은 취하는 것이 맞는데 이런 것들은 썩 좋지 않은 것 같다. 뭐 좋고 나쁨이야 본인이 판단하는 것이겠지만, 뭐랄까 BMK의 가공된 발성과 후에 붙이는 바이브레이션 같은 느낌으로 곡에대한 몰입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나 지금 기술 걸고 있어' 라고 간파당하는 느낌이랄까?
박정현은 그 많은 기교를 넣음에도 그것이 뭔가 예측불가능이기 때문에 그다지 기교에 포인트를 주지 않게 된다. 이와 정확히 비교되는 대상이 없을 경우에는.
가령 지난회차에 '이적'의 보컬은 기교 없이 담백하게 곡을 표현했는데, 이런 경우 상대적으로 단점이 이것 저것 드러나게 되는거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멜로디의 하나로 인식되는 본인의 보컬이, 어딘가 튀는 발음과 전달되지 않는 가사, 곡과 따로 노는 기교 등으로 분리되어 버리게 된다.
뭔가 존나 많이 썼는데, 아직 잠이 안온다. 난 언제쯤 잘 수 있을까?
다시, 김태원이 작곡한 노래에는 반복되는 어휘들이 있다. 가령 소녀, 아이, 비, 의자 이런 것들이다.
본래 노래라는 것이 첫방에 "딱!" 하고 마음에 들기가 엄청나게 힘들다. 특히 노래의 처음부분부터 듣기 시작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라디오나 TV의 이름모를 노래들이 인상에 깊이 남는 것 또한 이런 이유에서다. 정이 안가는 부분은 듣고 흘리는데 꽂히는 부분은 '이거다!' 라고 기억하기 때문에 우연을 빌미로 마음에 드는 곡을 찾게 되는 거다.
사람도 그렇지만 가수를 평가할 때 노래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그 인간 자체 역시 판단의 가늠자가 된다. BMK가 '나는 가수다'에서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수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옥주현이 까이는 모양이다. 영 사랑을 못 받는 모양임.
김태원으로 돌아가서, 만약 최초의 부활 노래에 대해 느낀 감흥을 A라고 했을 때, 김태원이 밀고있는 주요 어휘들을 섭렵한 후의 감흥은 B로 A와 같지 않다. 이 둘 사이에는 상당히 큰 갭이 존재한다. 이는 김태원 삶의 곡절에서 비롯된다.
가령 이승철이 '밖으로 나가 버리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라고 불렀던 이 곡은, 리멤버 앨범에 실릴 당시 구태여 김태원 자신이 불렀던 곡이다. 이유는 한 가지,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잠시 가사를 확인해 본다.
지금 슬픈 내 모습은 무대 뒤 한 소녀
애써 눈물 참으며 바라 보고 있네
무대 뒤에 그 소녀는 작은 의자에 앉아
두 손 곱게 모으고 바라보며 듣네 나의 얘기를
소녀는 나를 알기에 더더욱 슬퍼지네
노래는 점점 흐르고 소녀는 울음 참지못해
밖으로 나가 버리고
애써 눈물 참으며 바라 보고 있네
무대 뒤에 그 소녀는 작은 의자에 앉아
두 손 곱게 모으고 바라보며 듣네 나의 얘기를
소녀는 나를 알기에 더더욱 슬퍼지네
노래는 점점 흐르고 소녀는 울음 참지못해
밖으로 나가 버리고
애시당초 슬픈 가사다. 설명을 하자면 이 곡에 담긴 내용은 이런 식이다.
김태원이 쓰는 곡은 대부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가사가 씌어진다. 요컨데 자신이 쓴 곡은 곧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
문제는 김태원 본인이 당시 약에 취해 있었다는 사실에 있다. 즉, 무대 뒤의 소녀는 약에 취해 있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관객들 사이에서 차마 보지 못하고 안타까워 하고 있다는 거다. 여기에서 더욱 문제는 김태원 본인이 소녀의 거동을 알고 있다는 것에 있다.
이 노래가 끝이 나면 많은 사람 환호
뒤로 한 채 소녀에게 다가가 말없이 안아주리
뒤로 한 채 소녀에게 다가가 말없이 안아주리
이어지는 기타 솔로는, 여기까지의 정서가 전달되었다는 전제 하에 청자로 하여금 정말 구슬픈 정서를 느끼게 한다. 여기까지의 스토리를 알고 듣는 것과 모르고 듣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일은 여기에서 끝난게 아니다. 자신과 '소녀'의 이야기이기에 이승철에게 주지 않았던 그 노래는, 결국 부활 앨범에서는 부각되지 못하고 이승철의 솔로 앨범을 통해 '회상 III' 가 아닌 '마지막 콘서트' 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이에 대해서 아마 무릎팍으로 기억하는데, 김태원이 직접 한 말이 있다.
당시의 부활에 있어 이승철이 있고 없고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라고. 이보다 더 안타까웠던 것은, 자신이 무일푼이던 시절 이승철이 부른 '마지막 콘서트'의 저작권료가 나와서 근근히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점...
이런 사실들이 얽히고 설켜 '회상 III' 라는 곡은 정말 슬픈 곡이 된다. 물론 사람들은 '마지막 콘서트'로 알고 있고, 심지어 부활 콘서트에서도 마지막 콘서트라고 한다. 김태원은 이미 이런 단계를 초월했다.
김태원에게 '의자'는 기다림의 정서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소녀가 자신의 무대를 조마조마하며 기다리던 '작은 의자', 멀리 떠난 소녀를 그리던 소녀가 머물던 '너와 머물던 작은 의자', 그 모든 비밀을 간직한 '빈 의자'.
그리고 김태원에게 '비'는 '비와 당신의 이야기' 그 자체다.
이 곡은 '소녀'가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너무도 슬픈 김태원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가 눈이 오길 바라듯이
비는 너를 그리워하네
비의 낭만보다는 비의 따스함보다
그날의 애절한 너를 잊지 못함 이기에
당신은 나를 기억 해야하네
항상 나를 슬프게 했지
나의 사랑스럽던 너의 눈가의 비들
그날의 애절한 너를 차마 볼 수 없었던 거야
무척이나 울었네 비에 비 맞으며
눈에 비 맞으며 빗속의 너를
희미하게 그리며 우리의 마지막 말을
너의 마지막 말을 기억하네
비는 너를 그리워하네
비의 낭만보다는 비의 따스함보다
그날의 애절한 너를 잊지 못함 이기에
당신은 나를 기억 해야하네
항상 나를 슬프게 했지
나의 사랑스럽던 너의 눈가의 비들
그날의 애절한 너를 차마 볼 수 없었던 거야
무척이나 울었네 비에 비 맞으며
눈에 비 맞으며 빗속의 너를
희미하게 그리며 우리의 마지막 말을
너의 마지막 말을 기억하네
그는 비를 통해 그녀를 추억하고, 그녀와의 장면을 어떤 강한 인상으로 기억한다.
'사랑스럽던 눈가의 비들' 같은 것들, '비에 비', '눈에 비 맞으며' 이런 가사들은 다른 소절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며 당시의 슬픈 정서를 함축적이고 아름답게 전달한다. '햇빛 눈이부신 날에 이별 해봤니 비오는 날 보다 더 심해' 이런 가사를 생각해 보면, 의미는 유사하지만 김태원의 가사에는 본인이 느낀 감흥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눈물을 말한 것은 아니지만, 울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고 그것을 울고 있다고 기억하기 싫다는 것까지 표현이 된다는 거다.
이 곡이 대단한 것은 가사와 곡이 혼연일체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같은 가사를 반복하며, 후렴의 끝에 다다르면 그들의 슬픈 사랑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에 이른다.
우리의 마지막 말을
너의 마지막 말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너의 마지막 말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이전의 글에도 썼지만, 김태원의 곡이 가진 공감대와 폭발력은 가사와 멜로디의 시너지에서 나온다. 어떤 멜로디가 있다고 할 때, 이 멜로디의 분위기에 어울리고, 리듬감을 해치지 않으며 나아가 '각운' 같은 것 까지 만족시키는 가사를 쓰기가 쉽지가 않은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컬을 정해 두고 곡을 쓰는 것...
내가 오늘 '나는 가수다'를 봤는데, 뭐랄까 BMK의 무대는 이전의 글과 '상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평가야 하는 사람 마음이겠지만, 이전의 방송에서도 오늘 방송에서도 '달라진 창법'을 이야기하는데 대체 무엇이 달라진 창법이고 락 보컬인지 전혀 공감 할 수가 없었다. 락 보컬이라면 '윤도현' 이라는 표준이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보여주고 있잖나. 그는 이 전 글에도 적었듯이 '락 보컬이 보여줄 수 있는 응당 당연한 것들을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는 지극히 완성된' 보컬이다. 그래서 뭔가 새로운 것, 새로운 옥타브, 새로운 창법 이런것으로 보컬 쇼를 하는 것이 아니기에 다른 이들과 이질적이라고 말이다.
예전에 관광나이트 견학을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무대가수 한 명의 노래를 듣고 견학을 주선한 밴드 마스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노래를 저렇게 부르면 안돼, 저걸 질질 끈다고 카는데 저건 안된다."
"왜요?"
"춤이 안돼."
그러니까 술이 꽐라된 인간들이 흥에 겨워 춤을 추게 만들어야 되는데, 그 가수는 바이브레이션을 위해 이분음표를 사분음표로 부르고 있었던 거다.
이유는 좀 다르지만 결국 이런거다. 차를 타건 뭘 타건 관계가 없는데, 도착지는 서울이어야 한다. 단, 도착한 서울에는 '감동' 혹은 '메시지' 같은 것들이 있어야 한다.
BMK의 후렴을 타고 서울에 갔다. 서울에는 갔는데 거기엔 바이브레이션 밖에 없더라.
물론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거다. BMK에게는 뭔가 정제된 사운드가 느껴진다. 특히 마이크의 흡음수준을 넘어서는 그 성량은 무서울 지경이다. 그런데 이건 박완규가 평가가 안된다던 노래와 같은 수준이 아닌가. 그녀는 말 그대로 무대에서 모든걸 쏟아내고 왔다. 이런 무대는 결국 반복될 것이라는 예상을 남길 뿐이다.
박정현이 '소나기'를 실패한 이유는 곡과 보컬이 따로 놀아서다. 이 두 가지만 따로 놀았던 것이 아니라 곡과 보컬과 가사 이 세 가지가 모두 따로 놀았다.
음악적인 다양함을 위시한 '아일리쉬' 인지 뭔지의 편곡은, 다양성이나 신비감 같은 것을 줄 수 있을 지언정 가사와 전혀 어울리지가 않어. 게다가 보컬 성향 역시 단조가 아닌 장조다. 나 역시 2nd moon, 앨리스 인 네버랜드, 바드 이런 사람들 곡은 재미있게 듣는데, 소나기랑은 맞지 않는 옷이다.
지난 회차에 박정현이 이적을 찾아갔는데, 이적이 부른 그 몇 소절이 그렇게 좋았다. 역시 원곡자는 다르구만...
이런 차이인거다. 박정현은 주어진 곡으로 이걸 어떻게 부를까, 어떻게 표현할까 이런 것들을 궁리한다. 편곡을 어떻게 하고 여기에는 바이브레이션을 이렇게 넣고 뭐 이런저런 시도를 하겠지. 반면 현재 유일하게 '창작'이 가능한 참가자인 YB같은 경우는, 보컬을 사운드를 구성하는 '소리 중 하나' 정도로 여기고 사용하고 있다는 거다. 특히 오늘 경연의 리벌브와 마이크 같은 것들은, 그들이 내고자 하는 사운드에 지극히 충실한 셋팅이었다. 어디에서 꺾고 어디에서 지르고 이런 것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무대를 스스로의 의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아티스트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와 능력이다.
인터넷의 한 무리들은 나는 가수다가 '일방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을까 걱정하는 소리가 많았는데, 결국 기우일 뿐이라는 거다. 그들은 이제 '보컬쇼'에서 '무대'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일찍이 무대를 보여준 이소라는 탈락했지만.
김범수의 무대는, 편곡자와 가수가 만들어낼 수 있는 절정의 하모니였다. 모든 것이 계산된 무대는, 받아들일 준비가 된 관객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스케치북의 무대가 주는 분위기는, 출연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관객의 마음가짐이 존재하기에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가령 누구 나오면 지랄 발광을 하고, 누가 나오면 침묵하고 하는 합동 콘서트 같은 지랄쇼가 아니란 거다. 적어도 '나는 가수다' 라는 프로그램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들의 무대에 대한 퀄리티를 확보했다. 이제 어떤 공연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거다.
얼마전에는 '불후의 명곡 2'를 봤는데, 심수봉 정말 대단하더라.
비슷한 분위기로 이승철이나 변진섭 같은 스타일도 있는데... 이와는 또 다르게 차분하고 정제된 지성적인 느낌, 긴 호흡...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더라. 본인이 만든 노래를 본인이 기가막히게 부른다니...
샤이니의 종현은 고평가 받고 있는 보컬이긴 한데, 막상 들어보면 안정감이 하나도 없다. 무대에서도 그렇고 어떤 지긋하게 한 음을 연속해서 낸다고 했을 때, 매우 불안한 사람중의 하나다. 샤이니의 곡 자체가 빠르게 음정이 변하기 때문에 이것이 캐치되지 않았을 뿐, 흐느끼며 부르는 그의 노래는 똑같이 흐느끼며 부르는 시아 준수와는 다르게 감정이 확 와닿지 않는다.
김태원이 처음 미군부대에서 '불'을 발견했을 때, 그 짐승은 목 위의 부분으로 간드러진 고음을 갖고 놀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고음이 다만 목 위의 부분이 아니라 밑에서 쳐 올려서 목 위에서 컨트롤하는 느낌이라 소리는 가늘어도 힘 자체가 다른거다. 호흡이 시밤...
결과적으로 지금은 이게 안되지만, 박완규의 현재 보컬을 들어보면 배에서부터 뭔가 묵직한 것들이 목을 뻥 하고 뚫고 펑펑 나오는 느낌이다. 김태우의 보컬도 이와 유사한 느낌인데 차이점은 김태우는 배가 존나 거대한 울림통이고, 이 울림통의 지름만한 것을 목으로 그대로 뿜어 내는데 그걸 입을 약간 사용해서 컨트롤하는 느낌? 김태우도 모든 노래의 끝 처리를 바이브레이션으로 하긴 하는데, 그는 이걸 위해 박자를 늘리는 짓은 하지 않는다. 아마 마디와 마디를 자연스럽게 잇는 바이브레이션으로는 몇 손가락 안에 들 것 같다. 뭐랄까 김태우의 그것은 어딘가 컨트롤하는 측면이 있고, 가끔 뭉쳤다가 나오기도 하고 뭐 그런데, 박완규의 그것은 그냥 완전 날것이다. 존나 시원하다. 이건 박완규 혼자 놓고 보는게 아니라 옆에 어떤 보컬이든 좋다. 아무나 붙여보면 확 느껴질거다.
존나 가수를 반말로 막 쓰고는 있는데, 어차피 누구누구 씨 이렇게 쓰기에는 내가 지친다. 원래 눈에 보이면 선생님이지만 없으면 걍 담임, 담탱이잖나.
아이유는 괜히 출연했다가 이미지를 완전히 잃고 하차했고, 효린은 자신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했다. 효린은 정말 신기한 보컬인데, 특정 음역대의 주파수라고 해야되나 그게 마이크가 완전히 빨아먹는 그것이다. 이런 식으로 발성을 하는 애들이 종종 있는데, 슈스케이의 박보경도 특정 음역대에선 이렇다. 그런데 효린은 음색이 좀 더해지고 발성특성이 더해져서 존나 이게 강하다. 문제는 그 부분 말고는 전부 버렸다는 거다. 그리고 기술을 넣는 건 본인 마음이겠지만, 어차피 구성을 그렇게 하는 거면 버린 초반 부분에는 바이브레이션 따위 없이 그냥 놔야 되는데 이걸 안고 간다. 그래서 노래가 지루해진다.
예성은 어떻게 하면 저 만큼 삼키고 부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노래를 부르더라. 뭘 어떻게 하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원리 자체는 소몰이와 유사한데, 코를 좀 열어서 막힌걸 좀 명료하게 하는 느낌? 하지만 다이내믹은 전혀 없고 특히 '서시'를 그렇게 부르다니... 모든 곡을 한 가지 스타일로 소화한다. 서시 원곡을 들어보면 답답함을 알거다. 왜 불필요하게 진지한거지? 존나 기를 모아서 쨉만 날리는 느낌이다. 숨을 뱉지를 않어...
요섭은 '아 저 친구 좀 하네?' 싶었던 친구다. 그런데 이 친구는 가끔 음정이 완전히 나가더라. 난 이 친구가 가볍게 박자만 맞춰서 노래를 부르는 그런 스타일이 되게 마음에 들었다. 힘을 들이지 않고 노래 할 수 있고, 메인 보컬 아이돌답게 일정 수준 이상의 교과서는 갖추고 있다. 그런데 그 이상은 본 적이 없다. 좀 더 많은 독립무대와 곡을 봤으면 좋겠다.
이걸 쓴 이유가 옥주현 때문인데... 소위 아이돌이라 불리는 친구들은 정기적으로 무슨 교육같은걸 받는 모양이다. 노래를 들어보면 거의 공통적인 몇가지가 보인다.
여기에 자신의 뭔가를 녹여넣을 수 있느냐 없느냐인데, 교육 이전에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친구들은 이런걸 곧잘한다. 문제는 그들이 노래부르길 좋아하면서 생긴 고정된 특징들이 잔존한다는 거다. 이건 좋고 나쁨을 떠나서 곡을 자기것으로 만들 때 뭔가 변하게 된다는 문제가 생긴다. 곡을 딸 때 뭔가가 변하는 거다. 뭔가가...
나는 가수다에서 옥주현의 무대는... 이전 경연에서도 느낀 거지만 뭐랄까 몇 번을 노래해도 아마 '똑같이' 나올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극도로 연습된 뭔가를 담고 있다. 또한 정형화된 특징 같은것들이 은연중에 나온다. 곡의 기승 부분에 걸린 발음, 전결 부분에 이르러 고음에서 이어지는 음정에 대한 처리, 입으로 컨트롤하는 소리의 느낌, 바이브레이션 같은 것들. 이런 것들은 '뮤지컬'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대중에게 인식되며, 애시당초 까던 이들에게 깔 거리를 제공한다.
뭐 그들이 까고 말고는 별로 문제가 안되는데, 좋은 것은 취하는 것이 맞는데 이런 것들은 썩 좋지 않은 것 같다. 뭐 좋고 나쁨이야 본인이 판단하는 것이겠지만, 뭐랄까 BMK의 가공된 발성과 후에 붙이는 바이브레이션 같은 느낌으로 곡에대한 몰입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나 지금 기술 걸고 있어' 라고 간파당하는 느낌이랄까?
박정현은 그 많은 기교를 넣음에도 그것이 뭔가 예측불가능이기 때문에 그다지 기교에 포인트를 주지 않게 된다. 이와 정확히 비교되는 대상이 없을 경우에는.
가령 지난회차에 '이적'의 보컬은 기교 없이 담백하게 곡을 표현했는데, 이런 경우 상대적으로 단점이 이것 저것 드러나게 되는거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멜로디의 하나로 인식되는 본인의 보컬이, 어딘가 튀는 발음과 전달되지 않는 가사, 곡과 따로 노는 기교 등으로 분리되어 버리게 된다.
뭔가 존나 많이 썼는데, 아직 잠이 안온다. 난 언제쯤 잘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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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쓴 글이, 내가 모르는 곳에,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인용되고 싸질러지는 것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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