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이래서 이리이리
사실 보다보면 하고싶은 말이 생기는게 사실이다. 그게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뭔가 말을 하고싶단 거다.
오대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나는 가수다를 보다가 느낀 건데, 뭔가 감동을 주는 패턴에는 몇 가지가 있다.
가령 YB의 무대는 관객을 끌어안고 함께 달려가는 형태로 감동을 준다. 이 감동이란건 단순히 대단원의 막 같은 느낌이 아니라, 아티스트가 표현하고자 하는바를 말한다. 초반 자우림의 무대를 보면서 느낀건 "왜 저걸 저렇게 표현할까?" 라는 거였다.
사실 편곡이 중요하다 중요하다 하는데, 결국 편곡이란 껍데기일 뿐이고 그 본질은 같다.
이에 대해서는 박정현이 말했듯, 너무 많은 변형을 하면 원곡이 훼손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관객이 원곡에 대해 갖고있는 이미지를 날려버린다.
이런 효과는 어떻게 잘 이용해먹으면 새로운 시도에 적절할 수도 있지만, 그 신선함에 기대느니 관객이 가진 공감대를 자극하는 편이 안전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박정현이 그 어색한 발음으로 가사를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원곡의 가사를 청자가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이 크다고 본다. 마치 스펠링이 틀린 영어문장을 제대로 읽고 해석하는 형식으로 말이다.
박정현의 ㄴ 다음에 오는 일련의 발음이나 s 처럼 발음하는 ㅅ, 받침에 들어간 ㅅ을 모두 t 로 발음해버리는 것, 어미에 영어억양이 묻어나는 느낌들은 "사전에 충분히 연습되지 않은 새로운 곡" 에서는 지나치게 도드라진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박정현은 원곡의 멜로디를 최대한 그대로 불렀다.
다시 YB로 돌아가서, 일전에도 썼듯, YB는 응당 해야할 것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밴드이다. 락을 위시한 구성의 밴드가,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장르는 바로 "블루스" 다. 왜 그런지는 주위에 밴드 오래한 형님들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온다. 이유는 없다. 아무튼 그렇다. YB의 진수는, 나가수 무대의 블루스 무대를 보면 알 수 있다. YB는 "그래 이게 바로 락이지" 라는 말을 나오게 할 수도, "이야... 죽이는 무대군" 정도의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무대를 만들 수도 있는 밴드다. 그들은 청자가 받아들이기 힘든 주법과 창법일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실력을 가졌다.
옥주현은 "디바"를 지향하는 것 같다.
그녀는 이미 디바같이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문희준과 동일한 것이다.
그녀의 표현은 디바이지만, 그녀는 디바가 아니다. 문희준 역시 마찬가지다. 뭐랄까, 음악에서 자신이 수식되기 위해서는 남이 자신을 불러줘야 한다. 내가 꽃이 되기 위해서는 니가 내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
물론, 김범수처럼 본인이 비쥬얼 가수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낸 아주 특이한 케이스가 있긴 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닌 케이스다. 통계를 낸다면 버리는 데이터라는 말이다.
옥주현의 노래에는 낙차 큰 음정의 변화가 극히 드물다. 박정현은 무리다 싶을 정도로 낙차 큰 음정을 한큐에 찝어내는데 반하여, 옥주현의 무대는 조심스럽게 쌓아올린 음표만이 가득할 뿐이다. 거기에 "사랑" 을 "샤랑" 으로 변형시키는 류의 '우아함'을 지향하는 발음, 결정적으로 그것이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탄로난다는 점에서 무한한 점수를 잃는다. 그녀가 구사하는 일련의 기교는 지향하는 방향이 정해져 있고, 그녀의 편곡은 감동을 주는 가장 잘 알려진 스타일이었다.
옥주현이 가장 많이 사용했던 편곡의 방법은 신기하게도 옥주현 이전에는 '별로' 없었다. 너무 진부했기 때문에... 그 덕분에 되려 신선했던거다. 그리고 효과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약발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다시 자우림으로 돌아가서, 자우림의 무대를 보며 갸우뚱했던 것은 "과연 저걸 관객이 공감할까?" 라는 거였다.
관객이 공감하거나, 관객이 압도당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보여줘야 한다. 물론 이 둘 사이의 머리카락 만큼 얇은 틈에 있는 설명하기 힘든 몇 가지 경우가 있지만 대체로 이런 무대가 후일 회자된다.
자우림의 무대는 보고나서 물음표가 남는 무대였다.
가령 '매직 카펫 라이드' 같은 곡의 경우, 김윤아는 후렴을 완전히 날려서 불렀는데 이건 사전에 이 노래를 모른다면 그냥 망하는 선택이었다.
노래를 하나 만들 때, 특히나 노래의 후렴을 만들 때 그 멜로디와 박자를 위해 작곡자는 호박을 얼마나 굴려야 할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매력적인 멜로디라인을 그냥 날려서 불렀으니, 이 곡을 처음 듣는 청중의 경우 이걸 대체 어떻게 이해할까? 그게 설령 자신이 작곡한 곡일지라도 말이다.
정리하자면 문제는 "표현"에 있다. 옥주현과 자우림, 이 둘은 모두 "실력"은 있으나 "표현"에서 실패한 것이다.
명예졸업을 위한 길고긴 출연시간동안, 김범수는 사람들에게 완전히 노출되었다.
사실 김범수가 가진 최고의 피니쉬는, 사람들이 '김범수' 하면 떠올리는 그 [일련의 스타일-하이노트-애드립] 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니가 만약 일생일대의 승부를 한다고 치자. 그럼 넌 어떻게 할 것 같냐? 당연히 니가 가진 최고의 패를 낼거다. 그래서 그걸 냈는데, 1등이 안된다... 내성이 생긴거다. 이걸 어떡하지 히밤...
"사랑으로" 를 부르는 김범수를 보면서, '필살기가 망해버린 정도는 당연한 핸디캡이구나' 라는걸 알았다.
[내가 살아가아→↗느→은↘ 동안에]
[바람부는 버어→↗얼 파→네에↘ 서 있어도]
김범수는 모든 걸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무대가 다 똑같냐? 그건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 라는 상징의 의미로 피니쉬를 좀 쓴 것 뿐이다. 그리고 그게 너무 인상깊게 남아서 다른 부분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김연우와 김범수는 비슷하긴 한데, 김연우는 뭔가 존나 갈고 다듬은 느낌이 노래에서 느껴진다. 그런데 김범수는 그냥 "딱" 하고 그걸 그렇게 부른다. 뭐랄까 천연 다이아와 인공 다이아 같은 느낌인가? 아, 이러면 인공 다이아가 후져 보이나? 몰라 느낌이 그런걸 어떡하냐.
김조한 무대는 존나 뭐랄까 가수들만이 느끼는 뭔가가 있는 건가?
내가 듣기에는 김조한의 애드립 중 상당수는 코드와 관계없는 괴성인데, 가수들 귀엔 그게 관록쩌는 R&B 가수의 불꽃 애드립으로 들리는 모양이다.
사실 한국의 R&B 는 존나 애드립 교과서를 만들어서 다 같은 교재를 쓰는 것 처럼 보이긴 한다. 그래도 진행이란게 있잖아 이건 뭔가 아닌 것 같잖아 솔직히 맞는거냐?
조관우 무대를 보면 가성이 존나 높은 것 같긴 한데 음정이 안맞잖아... 근데 가수들 귀엔 그게 존나 환상적인 가성으로 들리는 모양이다. 내 귀는 썩었어 시밤...
감히 나같은 같잖은게 레전드들의 삑사리를 평가할 능력이나 있는 것일까? 그래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지 시밤
조관우의 자투리 연습영상을 보면 그가 무대에서 사용할 '애드립'을 연습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바꿔 말하자면 애드립이라는 이름을 가진 곡 진행의 필수요소를 연습하고 있었던거다. 존나 역설적인게 애드립을 진짜 애드립으로 해버리면 망하는 무대가 된다.
위에도 썼는데, '관객이 공감하거나, 관객이 압도당하거나' 이 부분이 몹시 중요하다. 김동욱의 '조율' 같은거다. 김범수의 '님과 함께' 같은 것. 무대위의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완벽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관객은 실제로 압도당하지 않았지만 '압도당했다' 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불후의 명곡 2' 에 나온 '알리'의 무대같이, 자신감에 가득찬 상태로 실수없이 진행된 '새로운 무대' 는 관객이 '압도당했다' 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사실 실제로 관객이 압도당하는 무대는 임재범의 '여러분' 같은 무대다.
[울어라]
윤민수는 슈퍼스타 K 나가면 지역예선에서 떨어질 것 같다. 나는 보면서 윤종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가 존나 궁금했다. 아... 만약 윤종신과 친하면 전화해서 물어보고 싶다.
슈퍼스타 K 하니 문득 생각났는데, 민훈기라고 슈퍼위크 1주차에 떨어진 애가 있다. 이 친구 목소리가 독특한데, 공명점을 울리는 듯 하지만 비음이 강하다. 비음이 강하고 뭐고 이건 사실 문제가 안되고, 문제는 얘가 이거 말고 다른걸 못한다는 거다.
이승철이 하는 지적중에 "밴드 사운드를 뚫고 나오지 못한다" 라는 것이 있다. 이걸 흔히 "성량이 구리다" 혹은 "힘이 안실린다 = 압이 약하다" 정도로 착각하는데, 이건 소리의 위치에 대한 문제다.
믹스된 밴드 사운드에서 각각의 악기들은 각자의 고유한 주파수 대역을 차지하고 있다. "밴드 사운드를 뚫지 못한다" 라는 것은, 자신의 보컬이 특정 주파수 대역에 묻혀있어서 들리질 않는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 마이크가 빨아먹는 소리를 내거나, 콘솔에서 마이크 채널 소리를 존나 올려서 이펙트를 먹이거나 해야 된다는 거다.
민훈기가 하는 대부분의 발성은 마이크가 빨아먹는 소리다. 신지수는 저음에서 이런 형태로 소리를 냈어야 하는 거였다. 안될 것 같긴 하지만...
김경호의 노래구성 중 기-승 부분은 거의 이런 형태의 발성을 사용한다. 힘을 싣지 않은 낮거나 중간 음역대이지만, 밴드 사운드 정도는 충분히 뚫는다. 자우림의 김윤아 역시 마찬가지다. 쨍 하는 느낌이 드는 발성은 공명점을 찾으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창법에 제한이 생기는데, 이건 박봄에게도 보인다.
처음으로 박봄의 목소리를 들은 건 빅뱅의 곡에서였는데, 박봄의 째쟁거리는 보컬은 피쳐링에서 힘을 발한다. 이 창법으로 한 곡을 소화하려면 존나 컨디션 조절을 한 몇 주 해서 침 맞고 무대에 서야 라이브로 한 곡 하겠는걸 정도의 느낌?
박봄은 기본적으로 입 근처에서 대부분의 소리를 만든다. 몸을 전혀 사용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고, 그나마의 소리도 입 주변에서 가공되어 몹시 힘들게 노래를 부른다. 때문에 리듬과 보컬이 일정 템포를 두고 그루브있게 붙는다는 느낌 (이건 장혜진도 유사하지만, 원인이 다름) 은 있으나 쓸데 없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이 경우 정박을 찝고 싶어도 찝히질 않기 때문에 신이 안난다. 이건 장혜진도 똑같다.
제일 큰 문제는... 민훈기도 그렇지만, 가공된 소리로는 많은 곡을 소화할 수도 없고 감정 또한 전달하기 힘들다. 그리고 무엇보다 듣는 사람이 지친다. 좀 다른 종류이긴 하지만 BMK나 장재인 같은 스타일도, 앨범 전체를 계속 듣기란 경우에 따라 힘들다.
감정 전달이 나와서 말인데, 사실 이 감정 전달이란게 웃기는 일이다. 노래 가사대로의 감정 전달은 솔직히 말하자면 '노래 가사대로 춤 만드는 형국' 이잖나.
박진영이 곧잘 하는 이 작업은, 대박치면 기쁨인데 그게 아니면 존나 찬란한 유치의 도가니다. 마찬가지로 감정 전달 역시 가사 그대로의 연기라면 어쩌면 우스운 형국이 아닐까.
또한 우리는 영 알아먹을 수 없는 언어로 된 곡을 듣고도 어떠한 감흥을 느끼는데, 이건 그 가수놈이 뛰어난건지 아니면 우리네 감수성이 극한에 다다른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결국 이 문제는 흑형들이 혼을 실어 노래하는 마냥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수 밖에 없는거다. 사실 감정 전달한답시고 쇼하며 부른 곡보다는 락커들의 담백한 창법이 '더 쉽게 감정을 전달하는 표현방법' 이다. 그들은 그 곡을 '부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와중'에 겸사겸사 감정도 전달한다. 그리고 이건 소울풀 흑형들도 마찬가지다.
점점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글이 뻗어가고 있는데, 결국에 와서는 노래란 건 많이 불러본 놈이 잘한다.
최근 불후의 명곡에 나온 강민경을 보면, 존나 맑은 톤으로 벌스를 부르더니 후렴에 가서는 이해리로 변신했다. 이해리는 벌스도 윤문식처럼 부르니까 둘 사이에 차이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결국 둘이 듀엣하면 후렴에는 이해리가 두명이잖나. 이러면 뭐하러 팀을 하는거지?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채우는 노력은 좋지만, 창법을 따라가는 건 곤란하다. 왜냐하면 벌스에 쓰던 자신의 맑은 톤이 더 매력적인데 그걸 알지 못하니까.
이런 문제는 소녀시대 서현에게서도 발견되는데, 가장 최근작 '아파도 괜찮아요'에서 보여준 그녀의 보컬은 태연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듯 했다. 어미 "요"를 처리하는 방법에서부터 고음으로 가는 방법, 한국형 발라드에서 폭발 후 수습의 요령 등 대부분이 목소리만 다른 태연이었다.
물론 태연은 좋은 보컬이다. 하지만 그걸 그대로 따라가면 곤란하다. 이를테면 초기의 태연이 하이노트를 처리하는 방법은 '보아'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Gee 이후의 방법은 이전과는 또 다르다. 문제는 이들이 모두 발전해 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는 거다. 때문에 롤모델로 삼으면 곤란하다.
이것저것 쓰고 싶은게 많았던 것 같은데, 영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게 쓰다보면 삼천포로 빠져서 제자리로 돌아오질 못한다. 지금 꼴도 나가수로 시작한 것 같은데 소녀시대로 끝났잖나.
사실 보다보면 하고싶은 말이 생기는게 사실이다. 그게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뭔가 말을 하고싶단 거다.
오대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나는 가수다를 보다가 느낀 건데, 뭔가 감동을 주는 패턴에는 몇 가지가 있다.
가령 YB의 무대는 관객을 끌어안고 함께 달려가는 형태로 감동을 준다. 이 감동이란건 단순히 대단원의 막 같은 느낌이 아니라, 아티스트가 표현하고자 하는바를 말한다. 초반 자우림의 무대를 보면서 느낀건 "왜 저걸 저렇게 표현할까?" 라는 거였다.
사실 편곡이 중요하다 중요하다 하는데, 결국 편곡이란 껍데기일 뿐이고 그 본질은 같다.
이에 대해서는 박정현이 말했듯, 너무 많은 변형을 하면 원곡이 훼손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관객이 원곡에 대해 갖고있는 이미지를 날려버린다.
이런 효과는 어떻게 잘 이용해먹으면 새로운 시도에 적절할 수도 있지만, 그 신선함에 기대느니 관객이 가진 공감대를 자극하는 편이 안전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박정현이 그 어색한 발음으로 가사를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원곡의 가사를 청자가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이 크다고 본다. 마치 스펠링이 틀린 영어문장을 제대로 읽고 해석하는 형식으로 말이다.
박정현의 ㄴ 다음에 오는 일련의 발음이나 s 처럼 발음하는 ㅅ, 받침에 들어간 ㅅ을 모두 t 로 발음해버리는 것, 어미에 영어억양이 묻어나는 느낌들은 "사전에 충분히 연습되지 않은 새로운 곡" 에서는 지나치게 도드라진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박정현은 원곡의 멜로디를 최대한 그대로 불렀다.
다시 YB로 돌아가서, 일전에도 썼듯, YB는 응당 해야할 것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밴드이다. 락을 위시한 구성의 밴드가,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장르는 바로 "블루스" 다. 왜 그런지는 주위에 밴드 오래한 형님들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온다. 이유는 없다. 아무튼 그렇다. YB의 진수는, 나가수 무대의 블루스 무대를 보면 알 수 있다. YB는 "그래 이게 바로 락이지" 라는 말을 나오게 할 수도, "이야... 죽이는 무대군" 정도의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무대를 만들 수도 있는 밴드다. 그들은 청자가 받아들이기 힘든 주법과 창법일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실력을 가졌다.
옥주현은 "디바"를 지향하는 것 같다.
그녀는 이미 디바같이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문희준과 동일한 것이다.
그녀의 표현은 디바이지만, 그녀는 디바가 아니다. 문희준 역시 마찬가지다. 뭐랄까, 음악에서 자신이 수식되기 위해서는 남이 자신을 불러줘야 한다. 내가 꽃이 되기 위해서는 니가 내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
물론, 김범수처럼 본인이 비쥬얼 가수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낸 아주 특이한 케이스가 있긴 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닌 케이스다. 통계를 낸다면 버리는 데이터라는 말이다.
옥주현의 노래에는 낙차 큰 음정의 변화가 극히 드물다. 박정현은 무리다 싶을 정도로 낙차 큰 음정을 한큐에 찝어내는데 반하여, 옥주현의 무대는 조심스럽게 쌓아올린 음표만이 가득할 뿐이다. 거기에 "사랑" 을 "샤랑" 으로 변형시키는 류의 '우아함'을 지향하는 발음, 결정적으로 그것이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탄로난다는 점에서 무한한 점수를 잃는다. 그녀가 구사하는 일련의 기교는 지향하는 방향이 정해져 있고, 그녀의 편곡은 감동을 주는 가장 잘 알려진 스타일이었다.
옥주현이 가장 많이 사용했던 편곡의 방법은 신기하게도 옥주현 이전에는 '별로' 없었다. 너무 진부했기 때문에... 그 덕분에 되려 신선했던거다. 그리고 효과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약발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다시 자우림으로 돌아가서, 자우림의 무대를 보며 갸우뚱했던 것은 "과연 저걸 관객이 공감할까?" 라는 거였다.
관객이 공감하거나, 관객이 압도당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보여줘야 한다. 물론 이 둘 사이의 머리카락 만큼 얇은 틈에 있는 설명하기 힘든 몇 가지 경우가 있지만 대체로 이런 무대가 후일 회자된다.
자우림의 무대는 보고나서 물음표가 남는 무대였다.
가령 '매직 카펫 라이드' 같은 곡의 경우, 김윤아는 후렴을 완전히 날려서 불렀는데 이건 사전에 이 노래를 모른다면 그냥 망하는 선택이었다.
노래를 하나 만들 때, 특히나 노래의 후렴을 만들 때 그 멜로디와 박자를 위해 작곡자는 호박을 얼마나 굴려야 할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매력적인 멜로디라인을 그냥 날려서 불렀으니, 이 곡을 처음 듣는 청중의 경우 이걸 대체 어떻게 이해할까? 그게 설령 자신이 작곡한 곡일지라도 말이다.
정리하자면 문제는 "표현"에 있다. 옥주현과 자우림, 이 둘은 모두 "실력"은 있으나 "표현"에서 실패한 것이다.
명예졸업을 위한 길고긴 출연시간동안, 김범수는 사람들에게 완전히 노출되었다.
사실 김범수가 가진 최고의 피니쉬는, 사람들이 '김범수' 하면 떠올리는 그 [일련의 스타일-하이노트-애드립] 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니가 만약 일생일대의 승부를 한다고 치자. 그럼 넌 어떻게 할 것 같냐? 당연히 니가 가진 최고의 패를 낼거다. 그래서 그걸 냈는데, 1등이 안된다... 내성이 생긴거다. 이걸 어떡하지 히밤...
"사랑으로" 를 부르는 김범수를 보면서, '필살기가 망해버린 정도는 당연한 핸디캡이구나' 라는걸 알았다.
[내가 살아가아→↗느→은↘ 동안에]
[바람부는 버어→↗얼 파→네에↘ 서 있어도]
김범수는 모든 걸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무대가 다 똑같냐? 그건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 라는 상징의 의미로 피니쉬를 좀 쓴 것 뿐이다. 그리고 그게 너무 인상깊게 남아서 다른 부분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김연우와 김범수는 비슷하긴 한데, 김연우는 뭔가 존나 갈고 다듬은 느낌이 노래에서 느껴진다. 그런데 김범수는 그냥 "딱" 하고 그걸 그렇게 부른다. 뭐랄까 천연 다이아와 인공 다이아 같은 느낌인가? 아, 이러면 인공 다이아가 후져 보이나? 몰라 느낌이 그런걸 어떡하냐.
김조한 무대는 존나 뭐랄까 가수들만이 느끼는 뭔가가 있는 건가?
내가 듣기에는 김조한의 애드립 중 상당수는 코드와 관계없는 괴성인데, 가수들 귀엔 그게 관록쩌는 R&B 가수의 불꽃 애드립으로 들리는 모양이다.
사실 한국의 R&B 는 존나 애드립 교과서를 만들어서 다 같은 교재를 쓰는 것 처럼 보이긴 한다. 그래도 진행이란게 있잖아 이건 뭔가 아닌 것 같잖아 솔직히 맞는거냐?
조관우 무대를 보면 가성이 존나 높은 것 같긴 한데 음정이 안맞잖아... 근데 가수들 귀엔 그게 존나 환상적인 가성으로 들리는 모양이다. 내 귀는 썩었어 시밤...
감히 나같은 같잖은게 레전드들의 삑사리를 평가할 능력이나 있는 것일까? 그래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지 시밤
조관우의 자투리 연습영상을 보면 그가 무대에서 사용할 '애드립'을 연습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바꿔 말하자면 애드립이라는 이름을 가진 곡 진행의 필수요소를 연습하고 있었던거다. 존나 역설적인게 애드립을 진짜 애드립으로 해버리면 망하는 무대가 된다.
위에도 썼는데, '관객이 공감하거나, 관객이 압도당하거나' 이 부분이 몹시 중요하다. 김동욱의 '조율' 같은거다. 김범수의 '님과 함께' 같은 것. 무대위의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완벽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관객은 실제로 압도당하지 않았지만 '압도당했다' 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불후의 명곡 2' 에 나온 '알리'의 무대같이, 자신감에 가득찬 상태로 실수없이 진행된 '새로운 무대' 는 관객이 '압도당했다' 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사실 실제로 관객이 압도당하는 무대는 임재범의 '여러분' 같은 무대다.
[울어라]
윤민수는 슈퍼스타 K 나가면 지역예선에서 떨어질 것 같다. 나는 보면서 윤종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가 존나 궁금했다. 아... 만약 윤종신과 친하면 전화해서 물어보고 싶다.
슈퍼스타 K 하니 문득 생각났는데, 민훈기라고 슈퍼위크 1주차에 떨어진 애가 있다. 이 친구 목소리가 독특한데, 공명점을 울리는 듯 하지만 비음이 강하다. 비음이 강하고 뭐고 이건 사실 문제가 안되고, 문제는 얘가 이거 말고 다른걸 못한다는 거다.
이승철이 하는 지적중에 "밴드 사운드를 뚫고 나오지 못한다" 라는 것이 있다. 이걸 흔히 "성량이 구리다" 혹은 "힘이 안실린다 = 압이 약하다" 정도로 착각하는데, 이건 소리의 위치에 대한 문제다.
믹스된 밴드 사운드에서 각각의 악기들은 각자의 고유한 주파수 대역을 차지하고 있다. "밴드 사운드를 뚫지 못한다" 라는 것은, 자신의 보컬이 특정 주파수 대역에 묻혀있어서 들리질 않는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 마이크가 빨아먹는 소리를 내거나, 콘솔에서 마이크 채널 소리를 존나 올려서 이펙트를 먹이거나 해야 된다는 거다.
민훈기가 하는 대부분의 발성은 마이크가 빨아먹는 소리다. 신지수는 저음에서 이런 형태로 소리를 냈어야 하는 거였다. 안될 것 같긴 하지만...
김경호의 노래구성 중 기-승 부분은 거의 이런 형태의 발성을 사용한다. 힘을 싣지 않은 낮거나 중간 음역대이지만, 밴드 사운드 정도는 충분히 뚫는다. 자우림의 김윤아 역시 마찬가지다. 쨍 하는 느낌이 드는 발성은 공명점을 찾으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창법에 제한이 생기는데, 이건 박봄에게도 보인다.
처음으로 박봄의 목소리를 들은 건 빅뱅의 곡에서였는데, 박봄의 째쟁거리는 보컬은 피쳐링에서 힘을 발한다. 이 창법으로 한 곡을 소화하려면 존나 컨디션 조절을 한 몇 주 해서 침 맞고 무대에 서야 라이브로 한 곡 하겠는걸 정도의 느낌?
박봄은 기본적으로 입 근처에서 대부분의 소리를 만든다. 몸을 전혀 사용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고, 그나마의 소리도 입 주변에서 가공되어 몹시 힘들게 노래를 부른다. 때문에 리듬과 보컬이 일정 템포를 두고 그루브있게 붙는다는 느낌 (이건 장혜진도 유사하지만, 원인이 다름) 은 있으나 쓸데 없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이 경우 정박을 찝고 싶어도 찝히질 않기 때문에 신이 안난다. 이건 장혜진도 똑같다.
제일 큰 문제는... 민훈기도 그렇지만, 가공된 소리로는 많은 곡을 소화할 수도 없고 감정 또한 전달하기 힘들다. 그리고 무엇보다 듣는 사람이 지친다. 좀 다른 종류이긴 하지만 BMK나 장재인 같은 스타일도, 앨범 전체를 계속 듣기란 경우에 따라 힘들다.
감정 전달이 나와서 말인데, 사실 이 감정 전달이란게 웃기는 일이다. 노래 가사대로의 감정 전달은 솔직히 말하자면 '노래 가사대로 춤 만드는 형국' 이잖나.
박진영이 곧잘 하는 이 작업은, 대박치면 기쁨인데 그게 아니면 존나 찬란한 유치의 도가니다. 마찬가지로 감정 전달 역시 가사 그대로의 연기라면 어쩌면 우스운 형국이 아닐까.
또한 우리는 영 알아먹을 수 없는 언어로 된 곡을 듣고도 어떠한 감흥을 느끼는데, 이건 그 가수놈이 뛰어난건지 아니면 우리네 감수성이 극한에 다다른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결국 이 문제는 흑형들이 혼을 실어 노래하는 마냥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수 밖에 없는거다. 사실 감정 전달한답시고 쇼하며 부른 곡보다는 락커들의 담백한 창법이 '더 쉽게 감정을 전달하는 표현방법' 이다. 그들은 그 곡을 '부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와중'에 겸사겸사 감정도 전달한다. 그리고 이건 소울풀 흑형들도 마찬가지다.
점점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글이 뻗어가고 있는데, 결국에 와서는 노래란 건 많이 불러본 놈이 잘한다.
최근 불후의 명곡에 나온 강민경을 보면, 존나 맑은 톤으로 벌스를 부르더니 후렴에 가서는 이해리로 변신했다. 이해리는 벌스도 윤문식처럼 부르니까 둘 사이에 차이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결국 둘이 듀엣하면 후렴에는 이해리가 두명이잖나. 이러면 뭐하러 팀을 하는거지?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채우는 노력은 좋지만, 창법을 따라가는 건 곤란하다. 왜냐하면 벌스에 쓰던 자신의 맑은 톤이 더 매력적인데 그걸 알지 못하니까.
이런 문제는 소녀시대 서현에게서도 발견되는데, 가장 최근작 '아파도 괜찮아요'에서 보여준 그녀의 보컬은 태연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듯 했다. 어미 "요"를 처리하는 방법에서부터 고음으로 가는 방법, 한국형 발라드에서 폭발 후 수습의 요령 등 대부분이 목소리만 다른 태연이었다.
물론 태연은 좋은 보컬이다. 하지만 그걸 그대로 따라가면 곤란하다. 이를테면 초기의 태연이 하이노트를 처리하는 방법은 '보아'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Gee 이후의 방법은 이전과는 또 다르다. 문제는 이들이 모두 발전해 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는 거다. 때문에 롤모델로 삼으면 곤란하다.
이것저것 쓰고 싶은게 많았던 것 같은데, 영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게 쓰다보면 삼천포로 빠져서 제자리로 돌아오질 못한다. 지금 꼴도 나가수로 시작한 것 같은데 소녀시대로 끝났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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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쓴 글이, 내가 모르는 곳에,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인용되고 싸질러지는 것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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