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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만들게 된 이유와 여러가지 것들을 설명하겠습니다.
그리고 왜 이것이 필요한지도 써야 겠고요, 여러 모로 중요한 일입니다.

전 칼럼을 하나 갖고 있습니다. 'Daum'에서 제공하는 것이었는데, 그곳에 여러 가지를 쓰면서 '분출의 욕구'를 잠재웠습니다.
문제는 간단했습니다. 다음에서 제공하는 '칼럼'은 여러가지로 굉장히 기능 적인 제약이 많았으니까요.



굉장히 오래 전 부터 구상했었던 것이었습니다. 'mcpinky LIKE fiction'이라는 이상한 문장은 정말 연식이 충만한 녀석입니다.

결 국 다음 칼럼이 제공하는 기능에 한계를 느끼고 보다 좋은 '도구'를 찾아다니다가, 친한 친구 녀석이 사용하는 '이글루스' 라는 블로그 서비스 제공 사이트를 찾았습니다. 사실 블로그니 칼럼이니 하는 이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전 다만 조금 더 자유로운 도구를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구상했던 것들은 항상 실행하는 과정에서 난항을 겪으며 포기하고는 했습니다.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이상하리 만치 집착하는 제가 유독 이것에 대해서는 포기가 빨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쩌면 난 호작질 거리를 찾는지도 몰라.'


이미 완성된 것들을 활용하기는 쉽지만 그 완성된 것을 완성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고작 호작질을 하려 한다는 사실이 명분을 옅어지게 했던 것이죠.





이 젠 그 때와도 다릅니다. 전 이미 '거의 처음부터 제작하다시피 한' 뭔가를 갖고 있고, 그것을 제작하며 쏟아부은 에너지를 '호작질'에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 '블로그'란 이름의 도구를 갖고 호작질을 합니다. 그리고 그 호작질은 '제작'을 하며 힘들었던 것에 비하면 정말 쉬운 일이며, 상대적으로 휴식거리가 되었습니다.






싸이월드라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곳을 처음 접한 것은 위에서 말했던 그 친구가 작은 클럽을 만들었을 때였죠.
인터넷에서 '클럽' 또는 '동호회'의 개념을 가진 커다란 사이트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 눈에 비친 싸이월드는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사이트에 가입을 하고서야 '작은 개인 홈페이지'를 제공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여러 모로 뜯어보기 시작했죠.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전 그것에 대해서 '너무 딱딱해'라는 느낌을 받았고, '아바타'와 마찬가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소스를 수정할 수 있게 하면 될 것을 이미 짜여진 형태 중에서 골라야만 한다는 것, 창 크기가 일정하다는 것, 글의 형태를 비슷비슷하게 밖에 할 수 없는 편집환경 등이 그랬죠.
모든 것의 원인은 '한정된 스킨의 제공' 이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창 크기는 고정되고 문장이 길어지면 읽기가 힘들기 때문에 문장은 짧아지게 됩니다.





예전에는 '그림'으로 분출했었습니다. 아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림을 통해서 제가 원하는 것들을 모두 할 수 있었죠.
유독 싫어했던 수채화는 '아크릴 물감'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습니다. 아크릴 물감은 유화처럼 흰색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릴 수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수채화와 섞어 쓸 수도 있었습니다. 싸구려 도화지에 구멍 날 일도 없었죠.



전 그림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잠자코 그림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 '이건 뭘 그린 겁니까?'라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가 그렸던 그림들은 저도 무엇을 그린 건지 모릅니다. 무언가 명확한 목적을 갖고 그린 것도 아닙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마다 전 몹시 당황했었습니다. 귀찮을 때는 그냥 대충 둘러대기도 했었죠.





전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 '덧칠'을 연습했습니다.
국 민학교 2학년 부터 4학년 까지, 틈만 나면 덧칠했습니다. 따라 그리고자 하는 그림을 도화지 위에 놓고 꾹꾹 눌러서 도화지에 자국을 냅니다. 그리고 그림을 걷어낸 뒤 남겨진 자국을 따라 선을 긋습니다. 후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미술부원들은 흔히 이것을 '빽칠' 이라고 하더군요.

아무튼 자국이 진하면 저절로 선을 따라 연필이 움직입니다. 하지만 자국이 진하면 진할수록 원본 그림은 심하게 훼손됩니다.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자국으로 본을 떠야 했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원본 그림을 참고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4학년 신학기가 되면서, 전 꽤 괜찮은 비율로 원본 그림을 모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손은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서 많은 것을 익힙니다. 프라모델을 만들때의 칼 놀림, 이것 덕분에 전 친구들이 가위로 색종이를 자를 때 칼로 자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것들을 손은 이상하게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중학교에서, 전 글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2 학년 국어 선생님은 제 글을 좋아하셨습니다. 전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쓰는 것인지 몰랐습니다. 원고지의 사용법도 가물가물했고, 그저 그런대로 맞춤법을 맞추고 그런대로 문단을 나누고... 그리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글을 썼습니다. 나오는 대로, 정리하지 않고, 단어가 가물가물 하면 대충 다른 단어나 문장으로 바꿔 가면서 그렇게 썼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쓰면서 그림을 그릴 때와 같은 뭔가를 느꼈습니다.

당시에는 느낄 수 없었지만 그때부터 제가 그림을 그리던 연습장에는 낙서가 추가되었습니다. 보통 연습장에는 낙서가 많아야 하지만 제 연습장은 낙서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두 그림이었죠.


그때부터 어렴풋이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좋아하는 것도 많고 말하고 싶은 것도 많고...
세상에는 남이 하는 말을 모두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전 연습장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처음에 제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싫어하셨죠.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국민학교 4학년 때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처음부터 유명한 화가의 트루컬러 그림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는 정말 힘이 듭니다. 어쩌면 불가능 할 지도 모릅니다.
만화라면 가능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만화가라도, 반드시 흑백에 외곽선이 분명한 그림을 그립니다.
국민학교 교과서에는 '쓰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지금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책은 선연습을 하는 데에 정말 좋은 책입니다. 반드시 왼쪽에서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진행되는 선의 방향을 제외했을 경우에 말입니다.
제 친구들은 쓰기책에 온 힘을 기울여 연필이 부러져라 글씨를 쓰고는 했는데, 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손가락이 아팠거든요. 하지만 선생님들은 굵고 진하게 글자를 쓴 쓰기책을 좋아했죠.



지 금 제게 남아있는 연습장은 별로 없습니다. 그 시절의 노트가 몇 권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림으로 채워진 그 노트가 '숫자 계산'이나 '암기를 위한 필기'에 활용되기를 바라셨고 가끔씩 검사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몇 권의 노트 역시 1996 년 경의 것입니다. 그 이전의 것들은 찾을수가 없군요.



언젠가 책상 서랍 뒤로 넘어간 공책 한권을 찾았습니다. 거기에는 고양이를 키웠을 때 '왜 이름을 꼰양이로 지었냐'에 대한 해답이 있었고, 그 시절의 그림과 낙서들이 조금 있었습니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 노트와 이 블로그.

언젠가 칼럼에 '안네는 천재다'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녀는 일기장을 '제 3자'로 인식했기 때문이죠.

혼자 이렇게 저렇게 쓰는 글은 혼잣말이 될 수 밖에는 없습니다. 쓸 수 있는 문체도 한정적이고 여러모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쓴다면, 아마도 상황이 많이 다를 겁니다.



이 블로그는 비록 제 유년시절의 노트와 같은 역할을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수근대는 형태로 쓰여질 겁니다. 왜냐하면 언젠가 이 블로그의 예전 글을 읽어보면서 '이런 일도 있었군'이라고 생각할 때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이 노트는 분실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위 글을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게재할 경우, 반드시 해당 사이트와 주소를 댓글에 남겨주기 바란다.
난 내가 쓴 글이, 내가 모르는 곳에,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인용되고 싸질러지는 것이 싫다.